<연작 시> 6.25의 기억 1,2,3,4

프레스아리랑 | 입력 : 2020/06/26 [08:37]

 

 

<연작 시> 6.25의 기억

 

권대섭/ 본사대기자 

 

 

 □ 6. 25의 기억 1- 인민군 병사와 소녀 

 
 
6.25때 우리 엄마는 열다섯살
열다섯살 귀여운 단발머리 소녀였다
 
한 차례 피난생활을 겪은 뒤
농사지으려 집에 돌아온 어느날
 
미군의 인천상륙으로 후퇴길에 나선 인민군
인민군 대열이 외갓집 마을을 지나갔다
 
한 병사가 외갓집에 들어와서는
외할머니 곁에 있는 우리 엄마를 보더니
 
"학생. 이거 한 번 신어봐~"
어디서 생겼는지 예쁜 꽃고무신을 주었다
 
"응. 꼭 맞구나. 학생 신어요"
 
돌아서 나가던 인민군 병사
다시 들어와서는 하는 말이
 
"학생 참 이뻐. 남북통일되면 
우리 같이 살아요"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던 인민군
손에 들고 있던 커다란 소대가리를
외할머니께 주면서 하는 말
 
"모친요. 이거 난리통에 주인없는 소를
잡아먹었어요. 남은건데 푹 고아 드시라요.
통일되면 우리 다시 만납시다. 같이 살아요"
 
총총히 사라져 간 그 인민군
하지만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었다
 
통일이 되었다면 혹 그 꽃 고무신이 
북쪽 청년이 남녘 소녀에게 주었던 
예물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 6. 25의 기억 2- 인민군 소녀병사
 
 
어느날 북으로 쫒기던 
인민군 여성대원들이
외갓집 마을에 들이닥쳤다
 
열입곱 열여덟살 쯤 되어보이는 
애리애리한 소녀들이었다
 
한창 부모의 사랑을 받아야 할
여고생 나이인 어린 소녀들
 
후퇴하는 인민군 대열에서 낙오한 
소녀병사들이었다
 
"오마니. 우리 이대로 가면 다
죽습네다. 무슨 일이든 할테니
좀 숨겨주시라요."
 
"여기서 살 수 있게 좀 숨겨
 주시라요. 살려주세요. 안갈래요"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소녀병사들을 숨겨줄 수 없었다
 
"잘못돼면 우리동네 다 몰살당해요.
우리도 마카 죽어요. 우야든지 살아서 
잘들 가이소"
 
사람들은 옷에서 이가 뚝뚝 떨어지는
소녀병사들이 너무도 불쌍했다
 
입을 옷을 주고 이불도 내어주고 신발도 
주고 먹을 것도 줬지만 숨겨줄 수는 없었다
 
추운 겨울 손발은 툭툭 터지고 
다 떨어진 옷에 땟자국 줄줄하던
그 소녀들...인민군 소녀병들은
살아서 무사히 북으로 갔을까?
 
 
 
□ 6. 25의 기억 3- 자수한 인민군
 
 
우리 외갓집 마을에
'귀산 아제'라 불리던 분이 있었다
 
일제말기에 평양까지 가서
중국사람 밑에 비단장사를 배워
돈벌이가 좋았다고 한다
 
해방이 됐지만 돈버는 재미에
그대로 있다가 3.8선에 막혀 버렸다
 
6. 25가 터지자 인민군에 징집됐다
전투를 치르며 남하해 오다보니
고향땅이 아닌가
 
순식간에 마음이 변한 그는 
인민군 진영을 탈영해 곧바로
고향마을 삼촌 집으로 숨어들었다
 
경북 군위군 고로면 인곡동
우리 외갓집 마을이다
 
인민군 복장으로 찾아 온 조카를 보자
삼촌은 반가웠지만 기가 막혔다
 
안 숨겨줄 수도 없고 
숨겨주자니 불안했다
고민끝에 조카에게 말했다
 
"얘야. 니가 여기 숨었다고 누가 
신고라도 하면 우리 집은 물론
마을 전체가 절단난다. 우야겠노.
영천경찰서로 가서 자수하는 게
좋겠다"
 
그 길로 인민군은 영천으로 가서
경찰서에 자수했다
 
"나는 원래 고향이 군위인데, 해방전
평양까지 갔다 나오지 못하고 인민군에 
징집되어 전쟁을 맞았심더. 고향에서 살고
싶어 탈영해 자수하러 왔으니 살려 주이소"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너 이쉐끼 가짜로 자수했지. 간첩이지.
사람을 얼마나 죽였노. 바른 대로 불어~!"
 
뒤지도록 맞고 고문당한 뒤 반주검이
돼서야 풀려났다
 
이후 고향마을에 자리잡고 장가도 가고
농사지으며 '귀산 아제'라는 택호도 얻었다
 
귀산 아제는 그러나 경찰서에서
맞고 고문당한 것이 골병이 되었다
시름시름 살다가 일찍 죽고 말았다
 
내 어릴 적 초등학교 4학년 무렵까지
외갓집에 가면 이웃에 귀산아제를 
볼 수 있었다
 
아제는 아들 둘을 낳았다
둘째 삼식이가 나와 동갑이었다
 
혼자 남은 아지매는 이후 두 아들을
데리고 친정 곳인 전라도 광주로 가서 
산다고 들었다
 
 
 
□ 6. 25의 기억 4- 청상과부의 사연
 
 
전쟁 중 우리 국군들이 진중에서
밥해 주고, 빨래해 줄 여자들이 
필요했다
 
가끔 피난지의 처녀들을 강제로 
징집해 데려가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보다 못한 부모들이 어린 딸을
피난지에서 만난 적당한 총각이나 
군인들과 혼인시킴으로써 딸을 
지키려 했다
 
하지만 그래봤자 였다
딸은 하룻밤 졸지에 머리를 올려 
군인들 밥해주러 끌려가진 않았지만
 
긴급 결혼한 남편은 대부분 전장에서 
죽거나 행방불명 되거나 상이군인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하여 생긴 청상과부들 
고달픈 여인네들이 많았다고 한다
 
전쟁을 겪은 우리 엄마 아부지 세대의
가슴아린 이야기
 
우리 다시는 전쟁하지 말자
미국이 일본이 암만 전쟁을 획책해도
우리끼리, 남북이 화해하여 손잡고 
다시는 이땅에 전쟁이 없도록 살자
자주 평화 통일로 가자
 
 
# 위 이야기들은 올해 85세이신 
우리 어머니에게서 어릴 때부터
들었던 것입니다. 자연스레 채집된 
이야기들을 잊어먹기 전에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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