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설교 단평> 내가 만난 한국의 시인들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19/09/17 [15:42]

<정설교 단평> 내가 만난 한국의 시인들

프레스아리랑 | 입력 : 2019/09/17 [15:42]

 

▲  임화

 


지난 2005년 3월 19일 이다.

나는 강원민족작가회의에 가입하여 시를 쓰면서 많은 작가들을 만났지만 그중에서 내 기억에 남는 분들은 민영, 이시영, 정희승, 이상국, 김영욱 시인이었고 그들 중에서 이기형 선생님을 나름 존경했다.

이에 나의 첫 시집 <흙의 노래>로 이기형 선생님께 발문을 부탁드렸지만 원고가 2달이 넘게 소식이 없었다. 이에 출판사와 같이 이기형 시인께서 살고 계시는 레미안 아파트를 찾아 갔더니 시가 분량이 너무 많고 대부분 작품성이 없다는 말씀을 듣고 더 이상 그분께 원고청탁을 한다는 건 무리라고 생각하여 원고를 도로 돌려받았다.


작가회의 모임에 나서면 이기형 선생님은 통일시인으로 우리시대의 영웅이었고 많은 시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이기형선생님을 만나면 한설야 등 북에서 활동하던 훌륭한 문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려 주셨는데 그중에서 임화에 대한 이야기로, 임화의 결혼을 중매한 사람이 박헌영이고 임화는 시만 쓰면 박헌영에게 보이고 박헌영을 수령이라고 불렀다고 들려 주셨다.

박헌영은 미국의 간첩으로 북에서 외무상겸 내각 부수상을 지낸 사람으로 전쟁이후에 그는 반역자로 처형되었다. 박헌영을 수령이라고 부른 임화도 간첩으로 처단된 것은 북에서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그런 임화의 시가 좋은 시라고 칭찬하시던 이기형 선생님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지만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한국의 시인들은 그가 북당국이 날조한 간첩죄로 공산당에게 이용만 당하다가 사형 당하였다고 하였지만 그는 친일파로 조선 문인보국회에서 평의원을 지냈다. 임화의 시중에 이런 박헌영 찬양시가 있다.


조선 근로자의

*위대한 수령 연설이
유행가처럼 흘러나오는
마이크를 높이 달고

임화가 꿈을 꾸던 세상은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자본주의였으며, 그 시대에 사회주의를 소원하던 75% 절대다수의 민중을 배반한 자로 그의 시는 작품성과 인간미를 떠나서 반민족, 반민중 시가 아닐 수 없다.

민족작가회의가 2008년 일본태생의 이명박이 권력에 오르자 민족이라는 말이 국수주의라 폄하하고 한국작가회의로 명칭을 변경한것은 자본주의로 흡수통일 꿈꾸는 시인들의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이기적이며 반민중, 반민족 자본주의에서는 시인다운 시인이 나올 수 없으며 반자본주의를 국가보안법으로 몰아붙이는 나라에서 나는 시를 쓰는 걸 중단하고 말았다.

정설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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