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록있는 작가 백인준
백인준(1920. 10. 27-1999. 1. 20. 김일성훈장수훈자, 김일성상계관인, 로력영웅)은 우리 나라 문학사에 지울수 없는 자욱을 남긴 관록있는 작가였다.
청년시절부터 시인이 될 꿈을 안고 모대기던 그는 해방(1945. 8. 15.)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만나뵙고 그이께서 내놓으신 새 조국건설로선을 무한한 감동속에 접한 후 새로운 문학창작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위대성을 칭송하며 위대한 수령님의 영광찬란한 혁명력사를 취급한 훌륭한 성과작들을 수많이 창작하였다.
대표적으로 송가들인 《수령님의 만수무강 축원합니다》, 《김정일동지의 건강을 축원합니다》와 가사 《장군님은 조선의 운명》, 서정시 《크나큰 그 이름 불러》, 영화문학 《누리에 붙는 불》 등이다.
창작가로서의 그의 재능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령도밑에 문학예술혁명이 수행되던 1970년대에 더욱 높이 발휘되였다. 그는 《꽃파는 처녀》를 비롯한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을 영화와 가극, 연극 등으로 옮기는 사업과 5대혁명가극창조사업에서 특출한 공로를 세웠다.
나날이 륭성번영하는 조국의 모습은 그에게 쓰지 않고서는 견딜수 없는 충동을 주었다. 그는 쓰고 또 썼다.
그는 대전성기를 맞이한 우리 문학예술의 보물고를 풍부히 하는데 이바지하는 다양한 명작들을 수많이 창작하였다. 그러한 작품들로 서정시 《조국에 대한 생각》, 풍자시 《벌거벗은 아메리카》, 가사 《오직 한마음》, 영화문학들인 《성장의 길에서》(1, 2부), 《최학신의 일가》(상, 하편), 《금희와 은희의 운명》 등이 있다.
그의 창작에서 특징적인것은 시대정신에 민감하고 철학적으로 깊이가 있으며 주제와 양상이 다양하고 극성이 예리한것이다.
그는 훌륭한 평론들을 집필한 작가이기도 하였다.
해방후 장편서사시 《백두산》(조기천 작)이 창작발표되였을 때 당시 종파분자들은 항일의 전설적영웅이신 김일성장군님의 업적을 칭송한 이 서사시가 인민들속에 파급되는것을 음으로양으로 방해하였고 시의 형식에 대하여 헐뜯었다. 백인준은 첫 혁명서사시 《백두산》에 대한 뜨거운 격찬의 목소리를 원고지우에 써나갔다. 그는 평론에서 혁명적랑만이 사회주의적사실주의와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는것, 이 서사시는 철두철미 교조적인것이 아니라 우리 인민의 정서와 사상감정을 반영하고있다는것을 힘있게 립증하였다. 평론은 당시 《로동신문》(1947년)에 련재되였다.
그후에 자연주의적이며 허무적이고 퇴페적인 시집이 나돌고있을 때 장검과 같이 예리한 붓을 든 사람이 백인준이였다.
그는 힘있는 평론활동으로 문학예술은 인민에게 복무하여야 한다는것을 립증하였으며 인민의 문학건설로 작가들을 선도하였다.
그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당과 인민정권을 강화하고 문학예술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정력적으로 사업하였다.
그의 시집으로는 《인민의 노래》(1947년), 《소박한 사람들의 목소리》(1953년), 《벌거벗은 아메리카》(1961년), 《백인준시선집》(1993년)이 있다.
《그는 조국과 인민이 사랑하는 대문호였고 문학예술계의 백전로장이였다. 그는 생전에 소설을 쓰지 못한것을 늘 아쉽게 생각하였다. 그에게 좀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그가 좀더 건강하였더라면 틀림없이 우리 나라 문학사에 기록될 소설을 창작하였을것이다.》고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석남진은 말하고있다.
양련희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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