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그리스 경제위기의 주범은 우익 정권이 늘린 국가부채였다

- 우리가 그리스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들-

프레스아리랑 | 입력 : 2020/09/16 [11:36]

 

 
최자영(전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
 
 
그리스 경제위기의 주범은 선심성 복지 포퓰리즘(인기영합)이 아니었다
 
조관식(국회 입법·정책조정위원장)이 아주경제(2020.9.11.)에서 <대한민국, 이대로 가도 좋은가?>라는 표제하에 그리스 국가부도에 대해 언급했다.
 
2010년 5월 그리스가 국가 부도로 무너졌을 때 아테네 대학 아리스티데스 하치스. 부교수가 “포플리즘(Populism) 경쟁으로 우리 나라는 망했다”고 한탄했다는 것이다.
 
조관식에 따르면, 1960~70년대 그리스는 일본보다 우량 국가였는데, 1981년 사회당의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가 총리가 되자 각료들에게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다 줘라"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그리고 최저 임금 인상, 공무원 증원, 전계층 무상의료, 연금 지급액 인상 등 인기 영합주의정책으로 전환 되면서 11년간 장기 집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조관식의 이런 말은 요즘 회자되는 재난지원금 지급을 ‘포퓰리즘’(인기영햡적 선동)의 일환으로 부정적으로 본다는 뜻이다. 그런데 좀 웃기는 것이 경제위기가 2010년에 났는데, 조관식이 말하는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의 집권은 이미 1996년에 끝났으므로 그 간격이 15년이다. 더구나 그의 3차에 걸친 집권 기간 사이인 1989-1993년 우익 신민당이 집권하여 상당한 정도로 우측 경도의 정책 및 제도 변화가 있었고, 또 경제위기 직전 약 5년간도 우익이 집권했다. 그러니 15년 전에 사망한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의 망령을 불러내어 2010년의 경제위기 주범으로 모는 것이 자못 생뚱맞다.
 
 
2009년 정권교체 당시 우익은 국가부채율을 속였다  
 
그리스 국가부도발발 직전인 2009년 10월 총선에서 중도사회당(PASOK: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이 승리했고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가 총리로 당선되었다. 2004년 3월 이후 카라만리스 총리로 출범했던 우익 신민주당(ND) 정권은 집권 2기에 들어선 다음 조기 실시한 2009년 총선에서 패배했다. 고위 인사의 잇따른 부패 추문의 악재에다가 그 해 8월 말 아테네 대형 산불에 대한 정부 책임론에 시달렸으며, 경기침체로 실업률이 치솟고, 재정적자가 발표 당시 국내총생산(GDP) 대비 6.5%[후에 확인된 실제 비율 15.7%]를 넘어서는 가운데 이어지는 폭력 시위 등이 정권 교체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사회당은 선거에서 경기 부양, 임금 및 연금 인상, 부유층 증세, 관료주의 혁파, 소기업 지원 등을 약속하면서 승리를 거두었다. 
 
2009년 총리가 된 이오르고스 파판드레우는 대표적 정치 명문가의 후손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총리직에 올랐다. 손자 이오르고스 파판드레우와 같은 이름을 가진 할아버지 이오르고스 파판드레우는 기간의 장단을 불문하고 세 차례나 총리직을 지냈고, 아버지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도 80-90년대에 걸쳐 3차례 총리직을 역임했다. 
 
미국 하바드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여러 대학에서 교수를 역임한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는 사회주의 정책을 다소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1981-1989년까지 이어진 두 차례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총리가 이끄는 사회당 집권을 통해서 그리스에는 빈부 간 격차가 줄어들었고, 무엇보다 도농 간의 격차가 현격하게 해소되면서, 경제적인 평등이 다소간 실현되었다. 더구나 이 시기에는 권력 분권을 통해 자치를 강화하는 민주정책이 시행되었다. 우익이 어떻게 매도하든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는 그리스인의 신임과 인기를 한 몸에 모았고, 그 아들 이오르고스 파판드레우가 2009년 총리로 뽑힌 것은도 부친 안드레아스에 대한 그리스인의 성원에 힘입은 바가 크다. 
 
손자 이오르고스 파판드레우는 처음에 공공부문 임금 인상 등 재정지출 확대를 공언했다. 일부에서 긴축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경기침체기에는 적극적 재정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중도 정당(PASOK)을 이끌면서 국제 좌파 정당들의 모임인 사회주의인터내셔널 의장까지 지낸 그는 그리스를 덴마크형 복지국가로 만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악재가 생겼다. 이오르고스 파판드레우가 집권하기 전 정권 우익 총리는 재정적자 규모가 GDP의 6.5% 수준이라고 발표했으나 몇 개월 후 자신이 직접 확인한 결과 실제 그 규모가 15.7%나 되었기 때문이다. 파판드레우는 이 사실을 공표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사실의 폭로가 국가 부도의 도화선이 되었다. 파판드레우 총리 자신은 정권을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경제위기에 대한 책임을 피해갈 수 있었다. 
 
그러나 5년 반 동안의 통치 파국의 책임을 묻는 여론 앞에서 우익 보수 신민주당은 지지 않고 맞짱을 떴다. 살림을 망치기 시작한 책임이 우익 정권 자신이 아니라, 이오르고스 파판드레우의 부친인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총리에게 있다고 선전을 했기 때문이다.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가 1980년대와 및 1990년대 중반 때부터 복지정책을 펴서 결국 파국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반론을 편 것이다. 조관식이 전하는 바, 아테네 대학 아리스티데스 하치스 부교수가 했다는 “포플리즘(Populism) 경쟁으로 우리 나라는 망했다”는 말은 바로 이런 우익의 변명을 대변한다.
 
주(駐)그리스 한국 외교관들은 주로 그리스 우익 정치가들과 교류한 것인지, ‘선심 복지 정책으로 그리스가 망했다’는 그리스 우익 위정자들의 변명을 그대로 한국으로 전했고, 그 사실은 한국에서 정설화되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은 딱히 그런 것만은 아니다. 여기서 분명히 밝혀둘 것은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의 복지 수준은 유럽 국가의 평균 이하이기 때문이다. 
 
 
민초를 양아치 취급하는 김종인은 국회의원의 보수를 깎고 싶은 마음이 없다 
 
잘못 이해한 그리스 이야기에 빗대어, 조관식은 ”포플리즘 복지 정책으로 인해 국민들은 국가에 기대게 되고 이에 따라 과다한 세금을 계속적으로 부과할 수밖에 없고, 결과는 서민들만 고통속에 살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는 동화 속에 나오는 폼프리포싸의 예를 든다. 폼프리싸가 국가의 복지 서비스 보호를 받고 앞날에 대한 걱정 없이 살아가는데, 복지 혜택의 범위가 점점 늘어 가면서 누진세 적용으로 세금이 더 증가하자 동화 쓰기를 포기하고 (상습적) 국가의 보호대상자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주먹구구 셈법일 뿐, 딱히 그런 것이 아니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복지는 최소한의 안전망일 뿐, 그 복지에 기대어 걱정 없이 산다는 것 자체가 과장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핵심은 국가로부터의 재정적 혜택이 누구에게로 얼마만큼 가는가 하는 점을 따져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경기를 부양한답시고 대기업 재벌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중소기업, 영세자영업자, 민초들에게로 돌린다면, 증세가 더 없어도 된다. 민초들에게 돌아가는 혜택만큼을 다른 부분에서 절감할 수가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정부 재정 씀씀이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관식은 한국의 국가 채무 비율은 연평균 4.4% 씩 증가하고 있고, OECD 34개국 중 4번째로 빠르다고 한다. 그렇게 비교를 좋아한다면, 그 OECD 국가 국회의원 보수나 특권이 한국만큼 높고 많은 데가 없으니 그것을 좀 깎아서 고통을 함께 분담하자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인지. 왜 하필이면 불황에 허덕이는 민초에게 몇 푼이라도 돌아가려는 것만 겁을 내는 것인지. 
 
국민의힘당 김종인 대표가 ”민초들이 국가 돈맛을 들이면 안 된다“고 했단다. 그 말뜻은 정부나 민초의 형편과 무관하게 아예 정부에서 돈 나누어주는 그런 전례 자체를 만들면 안 된다는 뜻이다. 민초들이 낸 세금을 가지고 위정자들이 주인인 양 갑질을 하고 있다. 김종인의 발상은 조관식의 걱정과 유사한 맥락에 있다.  
 
이 같은 한국 위정자의 인색함은 고전기 그리스 민주정치와는 정반대이다. 후자에서는 정부라는 것이 없고 민회의 민중이 최고 결정기구였다. 그래서 당대표가 아니라 모든 것을 민회에서 결정했다. 돈주머니는 민회의 민중이 직접 가지고 있었고 사안마다 민중이 적당량을 결정하여 갹출했다. 나라 땅에 광산이 개발되어 수입이 생기면 바로 공평하게 시민들에게 배분되었다. 정치적 결정권과 돈주머니를 모두 시민이 직접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민초가 명실공히 나라의 주인이었다. 국민의힘당 김종인, 아니면 더불어민주당 이낙연이 선심을 쓰거나 안 쓰거나 할 개재가 아니었고, 거기에 위정자의 ‘포퓰리즘’ 여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 돈주머니를 차고 있던 민초들이 자기 돈을 어디에 쓸 것인가를 직접 민회에서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리스에 대해 또 하나 잘못 알고 있는 것
 
그리스에 대해 우리가 가진 지식은 잘못된 것이 적지 않다. 고대나 현대에 대한 것이 다 그러하다. 그리스 고대 폴리스 민주정에서 시민들은 노예노동에 기생하여 참정권을 행사한 ‘귀족’인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은 잘못이다. 시민들 자신이 농사를 짓는 자영농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유사시에 창과 방패를 들고 전쟁터로 나갔다. 몸만 나가는 것이 아니라 각기 자신이 먹을 식량까지 준비해서 나갔다. 이들이 시민병이다. 훗날 시민병 대신 용병이 발달되어 보수를 받고 군역에 복무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을 때도 이 용병 병사들은 받은 보수에서 각기 밥을 사서 먹어야 했다. 그래서 전쟁이 일어나면 밥을 파는 상인들이 줄곧 부대를 따라다니곤 했다.  
 
아테네 민주정치는 정치의 권력구조적인 측면에서 말하는 것일 뿐, 사회경제적 계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고대 폴리스는 상비의 전업 공직자나 군인, 경찰 그런 것이 없었고 온갖 직책이 다 비상근이었다. 그래서 근대 국가와 같은 집권의 정부가 없었을 뿐 아니라, 조직적 수세제도도 없어서 가용할 돈도 중앙으로 모인 것이 아니었다. 그 대신 모든 결정의 중심은 돈주머니를 스스로 차고 있는 민중의 민회였다. 
 
고대 폴리스 민주정치는 권력구조적으로 정부 아니라 민중이 주도권을 잡고 최종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다. 공직자를 선출하는 경우에도 감시, 처벌권만큼은 민회의 민중이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었다. 우리가 시민권으로 알고 있는 자격도 집안에서 적자로 인정받는 것으로 성립된다. 시민의 자격은 권리라기보다 오히려 국가에 대한 의무와 봉사의 개념에 더 가깝다. 조직적 수세제도가 없으니 유사시에는 시민이 직접 생명과 재물을 희생하여 봉사했고, 그것을 뒷받침한 것이 각 가정이었기 때문이다. 시민권이란 것은 각 가정에서 국가에 대한 의무를 지겠다는 보증과 같다. 
 
고대 그리스 민주정은 시민이 노예노동에 기생한 귀족이 아니라 정부가 아닌 시민들의 민회가 주도권을 쥐고 있던 정치체제였다. 그 민주정치는 국민입법권(개헌발안권) 조차 없는 우리네 한국의 사이비 민주정과는 판이하다. ‘포퓰리즘’이란 정치가가 민중의 인기에 영합하려 할 때 쓰이는 것이나, 고전기 그리스 민주정치는 정치가가 아니라 숫제 민초가 스스로 결정권을 가지는 체제였다. 한국 헌법 제1조에도 모든 권력은 국민(민초)에게서 나온다고 되어있다. 통신비 2만원 받고 양아치 취급당할 것이 아니라, 명실상부하게 당연히 민초가 직접 결정하거나 적어도 감독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체제를 바꿀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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