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연재】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4)
1. 그이께서는 우리를 당의 아들로 이렇게 키워주셨다
김 룡 연
혁명의 위대한 수령이시며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김일성동지께서 직접 조직하시고 령도하신 조선인민혁명군에 내가 참가한 그때로부터 어느덧 오랜 세월이 지나갔다.
그사이에 변한것도 많고 기억에서 사라진것도 많다.
그러나 나어린 대원이던 내가 그이의 슬하에서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자라던 그 모든 일들, 그중에서도 내가 공산당에 입당하기 전후시기의 일들을 나는 언제나 잊지 않고 회상하군 한다.
보천보전투에서 승리한 1937년 그해 초겨울 어느날이였다. 우리는 며칠째 어려운 행군을 계속하고있었다. 짊어진 배낭과 총은 무쇠덩이처럼 어깨를 짓눌러 상반신이 앞으로 구부러드는것만 같았다.
이러한 때에 행군대렬의 선두에서 가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나의 곁으로 가까이 오시여 내가 메고가는 총을 보자고 하시였다. 나는 무심코 총을 벗어드렸다. 그이께서는 총을 받아드시고 주의깊이 살펴보시면서 《총관리를 잘하였소.》라고 칭찬하신 다음 총을 자신의 어깨에 메시는것이였다. 《제 짐은 무겁지 않습니다. 총을 주십시오.》나는 몇번이고 애걸하다싶이 총을 돌려주실것을 거듭 졸라보았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그이께서는 《룡연동무, 동무가 그렇게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총이지만 내가 한번 메여본다고 큰일나겠소.》하시며 웃으실뿐이였다.
나는 그이상 더 총을 돌려주실것을 간청하지 못하였다. 이윽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내가 공청조직에서 받은 분공을 어떻게 집행하고있는가, 학습은 어떻게 하고있는가 그리고 입당할 준비는 어떻게 하고있는가고 일일이 물으신 다음 나의 부족점들에 대하여 일깨워주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혁명을 위해서 모든것을 바치겠다는 결의가 일상생활에서 잘 표현되여야 하며 공산당원이 되기 위해서는 백전백승의 맑스-레닌주의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하여야 합니다. …당이 없이는 우리 혁명을 령도할수 없으며 혁명군중이 없는 당이 자기 목적을 달성할수 없습니다.
…당원이 되자면 자기자신이 혁명을 위해서 모든것을 바칠줄 아는 혁명정신과 대중을 조직동원할수 있는 정치적지도능력을 소유하여야 합니다.…
공청사업은 당사업의 중요한 부분이며 그 사업을 하는 기간은 당에 입당하기 위한 준비기간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선 공청조직의 위임을 모범적으로 수행하여야 합니다.
나는 그이의 이 간곡한 가르치심을 가슴깊이 아로새겨 늘 잊지 않고있다.
나는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이처럼 그이의 지도와 교양을 받으면서 입당을 준비하고있던 동무들이 나뿐만 아니였다. 내가 속한 중대만 하여도 많은 동무들이 있었다.
그후 어느날 그이로부터 나는 초급선동원사업을 할데 대한 과업을 직접 받았다. 나는 이 영예로운 임무를 받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였다. 아직 어리고 모든 일을 배우는 과정에 있던 나로서는 어떻게 이 임무를 감당해내겠는가 혼자 몹시 근심하였다. 그러나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직접 주시는 구체적인 가르치심과 방향대로 한다면 능히 이 임무를 수행할수 있다는 굳은 결의와 자신심만은 잃지 않고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이께서 가르쳐주신 그대로 대원들앞에 출연하였다. 그런데 첫 출연인것만큼 너무나 긴장되고 흥분되여 그 선동내용과 방법이 어떻게 되였는지 자기도 판단할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이께서 그처럼 일일이 가르쳐주신 그대로 다하지 못한것만 같아서 마음속 어딘가 불안하였고 근심에 사로잡혔다.
그날밤 나는 우등불가에 앉아서 다시한번 수첩을 뒤져가며 그이께서 가르치신대로 자기 임무를 다했는가 하고 내가 한 선동사업에 대하여 이모저모로 돌이켜보고있었다.
이럴 때에 우리 중대에 오시여 대원들의 휴식정형을 돌아보시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나의 곁으로 오시여 나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며 《룡연동무는 오늘 행군에서 선동사업을 아주 잘했소. …동무들이 모두들 힘든줄 모르고 길을 걸었다는 말을 들으니 참말 기쁜 일이요.》라고 말씀하시였다. 나는 벅차오르는 감격과 흥분으로 하여 무엇이라 대답할바를 몰랐다.
이때 그이께서는 나의 선동원수첩을 보시면서 앞으로 선동사업을 더 잘하기 위하여서는 남이 가르쳐준 내용이나 제강에만 의존할것이 아니라 자기 중대앞에 제기된 과업을 정확히 료해하고 대원들의 구체적인 형편에 알맞게 자기가 느낀 감정으로 진실하게 선동해야 하며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것은 선동원자신이 제기된 과업수행에서 항상 모범을 보이는것이라고 가르쳐주시였다.
《룡연동무는 능히 선동사업을 잘해낼수 있소. 그렇다고 방심하거나 자만해서는 안되오. 성과와 발전이 있을수록 더 강의성을 가지고 맡은 사업을 이악하게 수행해나가야 하오.》
나는 그이의 말씀을 가슴깊이 아로새겼다.
그리고 다시한번 (오직 사령관동지의 가르치심에 충실하리라.)고 굳게 맹세하였다.
그처럼 우리를 따뜻이 사랑하고 옳은 길로 인도하여주신 그이의 지도밑에서 나는 나날이 단련되고 성장하였으며 마침내 공산당원의 영예를 간직할수 있었다.
이처럼 영예롭고 보람있는 길로 인도하여주시고 키워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기대에 보답하기 위하여 우리들은 혁명을 위하여 한걸음도 물러서지 말며 그이께서 계시는 사령부를 목숨으로 사수할것을 서로서로 맹세했고 또 물불을 가리지 않고 싸웠다.
1940년이 되는 해였다.
바로 이 시기는 국제적으로도 매우 긴장한 때였지만 우리 혁명에서도 가장 간고한 투쟁의 한해였다. 일제침략자들은 대량적인 유생력량과 군수기자재의 거듭되는 손실에도 불구하고 계속 발악적으로 병력을 투입하였으며 특히 조선혁명의 사령부가 있는 밀영지를 수색하기에 피눈이 되여 날뛰였다. 당시 적들이 동원한 비행기만 하여도 매일 수십대씩 우리들의 주변상공을 떠돌며 기총사격과 폭탄을 던지며 삐라를 뿌렸다.
이러한 때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쉴사이없이 전투와 행군을 직접 지휘하시였으며 광활한 지역에 널려있는 혁명조직들을 지도하시기에 여념이 없으시였다.
이러한 긴장한 환경속에서도 그이께서는 늘 중대와 소대, 분대들에까지 직접 내려오시여 대원들의 형편을 보살피시며 당원들과 공청원들의 사업을 친히 지도하여주셨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그이의 안전과 건강에 대하여 념려하지 않을수 없었고 모여앉기만 하면 이에 대하여 토론하군 하였다. 우리는 우선 보고제도를 더욱 강화하고 그 어떤 사소한 일이라도 반드시 그이께 제때에 구체적으로 알려드리도록 하는 한편 신변과 건강에 류의하시기를 간청하였다.
그런데 이 사실을 어느새에 아시였는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나를 그토록 념려해주며 모든 일을 제때에 나에게 알려주려는 동무들의 심정은 잘 알만하오. 그러나 동무들이 전해주는 보고나 통보가 우리 대원들의 다정한 얼굴이 될수 없으며 그들의 소박한 심정을 다 반영할수는 없소.
그이께서는 그후에도 여전히 적들이 준동하는 험한 산길을 헤치시고 밤이고낮이고 대오를 돌아보시였다. 때문에 우리는 항상 그이를 튼튼히 호위할 방도에 대하여 생각하군 하였다.
한번은 사령부당단체에서 당총회준비를 위한 당원협의회를 가지면서도 일부러 그이께 알려드리지 않았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 어떻게 아시였는지 인차 회의장소로 찾아오시였다. 천막문을 열고 들어오시면서 회의에 참가해도 좋은가고 물으시는 바람에 모두 어쩔바를 몰라했다.
여기에는 모순이 있소. …무엇이나 다 알려주겠다고 하더니 내가 생활하는 당회의도 알려주지 않고 빼놓고 하려는군. …당원이 리유없이 자기가 속한 당단체생활이나 회의에서 제외될수는 없소.
그이께서 부드러우나 엄격하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다.
이날 그이를 모시고 진행된 협의회에서 토의되고 그후 당총회에서 결정된 과업들은 모두 성과있게 집행되여갔다.
그런데 그중에서 벽보편집을 지도방조할데 대한 과업만은 그후에도 정확히 실천되지 못하고있었다. 그이께서는 당단체책임자였던 강동무와의 담화를 통하여 이 사실을 아시게 되시였다.
그것은 사령부당단체내의 당원들이 대부분 중요한 직책에 있는 간부들로서 모두들 관하부대지도사업에 파견되였기때문에 남아있는 몇명의 경위중대동무들로써는 그 준비정도로 보아 벽보원고집필을 분공받고 원만히 수행할 형편이 못되였던 사정과 관련되여있었다. 이러한데로부터 강동무자신이 혼자서 애를 쓰고있었다.
이 사정을 아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강동무에게 《위원장동무, 어째서 분공줄 사람이 없겠소. …우선 나도 사령부당단체에 속한 당원의 한사람이 아니요.
나에게도 벽보원고 한건쯤은 더 분공하여줄수 있지 않소.…》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경위중대동무들중에도 아직 글을 써보지 못한 동무들이 있으니까 처음부터 모두 훌륭하게 잘 쓰지 못할수 있으나 그들에게 구체적인 지도와 방조를 준다면 누구나 못해낼것이 없다고 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시였다고 한다.
대원들에게 구체적인 분공을 주며 실제사업을 통하여 키워주는것,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간부육성사업이고 당사업의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대원들을 대담하게 믿고 과업을 주며 그들을 도와주어서 모두가 다 무슨 일이나 독자적으로 능히 감당해낼수 있게 키우지 않는다면 우리가 일제와 싸워 이겨서 조국이 광복된 그때에 그 많은 일을 해결하기가 매우 힘들게 될것입니다.
이렇게 강동무와 당사업에 대하여 담화하시던 그이께서는 그 당시 요탄에 나가서 병치료를 받고있던 오백룡련대장과 김철만동무며 기타 그곳에 함께 있는 대원들이 지내는 형편을 나가보았느냐고 물으시였다고 한다.
강동무는 속으로 근심을 하고있었을뿐 그동안 짬이 없어서 나가보지 못하였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벌써 나가보아야 할것이였소. 한사람의 혁명동지도 우리에게는 비할바없이 귀중하오. …항차 우리 혁명가들에게 있어서 어머니와 같은 당위원장동무가 나가보지 않아서야 되겠소. 벽보는 나에게 맡기고 어서 갔다 오시오.
그리하여 강동무와 함께 경위중대의 몇동무는 그길로 요탄에 나갔다. 그곳에서 환자들에 대한 치료정형도 살펴보고 그곳 사업을 도와주면서 당회의결정을 전달한 다음에 다시 사령부로 오게 된것은 그 다음날 이른새벽이였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천막에는 아직도 등잔불이 켜져있었다.
아직 자리에 눕지 않으셨으면 갔다온 보고를 할 생각으로 강동무가 먼저 조심히 천막앞으로 다가섰다. 그러나 그는 천막문을 쳐들고 선자리에서 잠시동안 말없이 가슴만 들먹이고있었다.
이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등불곁에 벽보판을 세워놓고 앉으시여 싸리나무가치로 만든 《붓》끝에 물감을 묻혀가며 벽보테두리를 단정히 그어나가고계시였다. 그러시다가 그이께서는 강동무를 보시고 《수고했소. 어서 들어오시오.》라고 말씀하시면서 손에 쥐고계시던 싸리《붓》을 놓고 마주나오시였다.
《그래 그곳 동무들의 병세가 그전보다 좀 어떻소?》 이렇게 물으시는 그이의 말씀에 강동무는 자세한 정형을 보고하고나서 그곳에 있는 동무들이 오히려 사령관동지의 건강을 념려하고있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우시며 《알만하오. 내가 벽보를 손질한다고 또 충고하는구만. …념려하지 마오. 무슨 일이든지 하고싶어서 하는 일은 피곤을 모르는 법이요. 경위중대원동무들이 어찌나 실감있게 글을 썼는지 나도 그만 거기 끌려들어서 손을 대게 됐소. 그런데 위원장동무, 잘못된데나 없는지 어서 좀더 가까이 와서 보아주시오.》라고 말씀하시면서 그곁에 놓았던 싸리《붓》을 다시 손에 쥐시였다는것이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 당원들과 대원들을 키워주시고 교양하여주신 실례는 헤아릴수없이 많았다.
우리는 이렇게 혁명의 전사로 키우고 가르쳐주신 그 사랑을 한시라도 잊을수 없다.
바로 오늘도 우리들은 언제 어디서나 당의 유일사상으로 철저히 무장하여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 무한히 충직하며 그이의 가르치심이라면 모든것을 바쳐 싸울 결의를 더욱 굳게 다지게 된다.
2. 누룩에 담긴 이야기
한 익 수
1937년 3월초순이였다.
압록강연안에 진출하여 적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던 우리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는 국경지대를 떠나 룡강산줄기의 수림속을 행군하고있었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앞으로 진행할 조국진군을 예견하시고 국경지대에 집결된 적들의 력량을 분산시키는 동시에 당시 무송방면에서 활동하고있던 부대들을 만나시기 위하여 우리 부대를 친솔하시고 이동하시는중이였다.
우리 부대가 만강부근에 도착하자 식량이 떨어졌다. 우리는 이곳에서 감자 몇섬을 구해가지고 다시 행군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부대인원이 많다보니 그것으로는 며칠을 견디기 어려웠다. 더구나 인가도 없는 무인지경이라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부대가 룡강산줄기에 접어들무렵에는 비상용으로 남겨두었던 약간의 미시가루마저 떨어지고말았다. 목적지인 양목정자까지는 앞으로 며칠 더 행군해야 했다. 그런데 우리들은 벌써 며칠째 굶으면서 눈쌓인 산림속을 행군하고있었다.
그날도 허기증과 행군에 지친 몸으로 세찬 바람을 안고 눈이 무릎까지 빠지는 산발을 헤쳐가자니 우리들은 반나절이 되였건만 겨우 몇리길밖에 걷지를 못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런 정형을 살피시고 점심때가 좀 지나 양지쪽 산중턱에 있는 넓은 공지에 이르자 우리들에게 휴식할것을 명령하시였다.
아름드리나무들을 잘라내고 인삼을 재배하던 이 묵밭이 된 공지옆에는 커다란 귀틀집 몇채가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종전에 우리들은 산림속에서 가끔 이런 인삼밭을 만나 식량을 해결하군 하였다. 약재상들이 경영하는 이런 인삼포전에서는 수백명의 로동자들이 일하였으므로 식량은 언제나 저장되여있었던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벌써 2년전의 일이다. 1년전부터 적들은 이런 산림속에서까지 인삼을 재배하지 못하게 엄금하였다. 그런 관계로 우리가 들린 귀틀집들은 텅 비여있었다.
휴식할 집들이 정해지자 우리 경위분대동무들은 뜨락에 쌓여있는 장작을 부엌으로 날라들이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때 전령병이 나와서 사령관동지께서 부르신다고 하기에 나는 곧 사령부로 들어갔다.
그이께서는 나에게 련대들에 내려가 식량사정을 알아오라는 임무를 주시였다.
신호병으로서 사령관동지의 뜨거운 사랑에 늘 접해온 나는 대원들을 아끼고 위하시는 그이의 뜻을 짐작할수 있었다.
사령부를 나온 나는 맨처음 7련대가 자리잡고있는 귀틀집에 들렸다. 나는 련대장동지를 만나 그저 식량이 있는가를 물어보았다.
7련대장은 《없소, 그것은 왜 묻소.》라고 불쑥 대답해놓고는 잠시 그 무엇인가 생각하고있었다.
어째서 묻는지 아직 짐작되지 않는듯 련대장의 얼굴에는 의문의 빛이 떠돌고있었다.
나는 더 오래 끌 일도 아니기에 사령관동지께서 식량사정을 물으러 보내시더라는것을 그한테 솔직히 이야기하였다.
그는 나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펄쩍 뛰며 《그런걸 왜 진작 말하지 않았소? 그럼 없다고 말씀드려서는 안되겠소. 돌아가거든 한두끼 먹을것이 있다고 보고하오. 꼭 내 말대로 보고해야 하오.》라고 나에게 재삼 당부하는것이였다. 될수 있는한 사령관동지의 심려를 덜어드리려는 7련대장의 이 말을 들은 나는 그의 깊은 심정에 감동되지 않을수 없었다.
다음번에 나는 8련대를 찾아갔다. 거기서도 대답은 역시 마찬가지였다. 돌아오자 나는 사령관동지께 련대장들이 당부하던대로 보고를 했다.
군용지도를 보시다가 보고를 받으신 사령관동지께서는 나를 바라보시더니 《우리도 식량이 떨어졌는데 거기라고 있을리 없지, 무엇이 있겠소. 그건 아마 련대장들이 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일거요. 아직 한 사흘동안 더 행군해야겠는데 어떻게 할가?》라고 하시고는 생각에 잠기시는것이였다.
이윽고 사령관동지께서는 이곳 사람들은 아무리 집을 비우고 가더라도 얼마간의 식량은 남겨두고 떠나는 법이니 경위대원 두 동무를 데리고 집주변을 돌아보라고 하시였다.
나는 경위대원 두 동무와 함께 귀틀집들의 안팎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끝내 식량을 파묻은듯한 흔적을 발견하지 못한 우리들은 다시 묵밭이 된 공지를 헤매며 눈무지를 헤치기도 하고 부근 산림속의 아름드리 잣나무옆이며 진대나무밑을 뚜져보기도 하였지만 이렇다할 소득이 없었다.
우리들은 하는수없이 사령부가 자리잡고있는 귀틀집으로 돌아오게 되였다.
뜨락에 들어선 나는 사령관동지께 빈손으로 들어가 보고할것을 생각하니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하는수없이 한가닥의 희망을 가지고 사령부가 자리잡고있는 귀틀집을 뒤져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경위대원동무들과 함께 부엌바닥을 뚜져보았으나 역시 허사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목마를 타고 천장으로 올라갔다. 어둠침침한 한구석에는 헌 마대뭉치가 있었다. 나는 얼른 마대뭉치를 헤쳤다. 그러자 거기서는 뜻하지 않던 누룩 네덩이가 나타났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별반 식량이 될것 같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거나마 얻게 된것도 다행이였다. 그 누룩덩이를 가지고 사령부로 들어가니 사령관동지께서는 책을 읽고계시는중이였다.
아무리 찾아도 식량은 없고 있다는것은 단지 이 누룩뿐이라고 보고하자 사령관동지께서는 《…모두들 수고했소. …그것두 낟알로 만든것인데 왜 식량이 안되겠소. 어서 련대들에 나누어 내려보내도록 하오.》라고 하시였다.
경위대원과 나는 누룩을 두덩이씩 나눠가지고 떠났다. 7련대로 내려간 나는 련대장앞에 누룩덩이를 내놓으며 사령관동지께서 보내시더라는 말을 하였다.
련대장은 나를 쳐다보더니 《모두 몇덩이나 있었기에 우리한테 이렇게 두덩이씩이나 가져왔소?》라고 물었다.
그는 벌써 사령관동지께서 련대들에만 내려보내시고 사령부에는 아무것도 남기시지 않았으리라는것을 짐작한 모양이였다. 그래서 나는 부득불 사실대로 말할수밖에 없었다. 나는 얻은 누룩 네덩이중에서 련대들에 두덩이씩 가져오고 사령부몫은 남기지 못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랬더니 련대장은 칼로 누룩을 절반 잘라내여 사령관동지께 대접하라고 하면서 나에게 반덩이를 도로 내여주는것이였다.
가슴에 누룩을 안은 나는 사령부를 향해 발걸음을 다그쳤다.
사령부에 도착한 나는 7련대장이 일러주던대로 누룩을 칼로 얇게 저미여낸 다음 그것을 불에다 구워가지고 사령관동지께서 계시는 방으로 들어갔다.
누룩을 도로 가져오게 된 사연을 들으신 사령관동지께서는 《알만하오. 그러면 기관총대동무들에게 보내오.》라고 말씀하시였다.
이것은 언제나 무거운 기관총을 메고 행군하는 그 동무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깃든 말씀이였다.
그러나 벌써 며칠씩이나 변변히 식사를 못하신 그이의 신변이 걱정되여 나는 《사령관동지께서도 좀 잡수셔야 하지 않습니까.》라고 말씀드렸다.
《난 아직 괜찮소. 어서 기관총대에 갖다주시오. 그리고 경위분대는 모두 이리로 들어오게 하오.》라고 하시며 사령관동지께서는 미소를 띠우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어찌다 특별한 음식이라도 생기면 반드시 경위분대동무들에게 조금씩이라도 골고루 나눠주시고나서야 자신도 드시였다. 그이의 이러한 심정을 잘 아는것만큼 나는 더 말씀드릴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뜨거운 사연이 깃든 이 누룩은 기관총대동무들에게로 돌아가게 되였다.
날은 어느덧 어둑어둑해졌다.
부엌에서는 경위분대동무들이 소금을 두고 끓인 물을 주전자에 부어넣고있었다.
우리들은 그이께서 계시는 방으로 들어가 온돌에 빙 둘러앉았다. 초불을 켜자 나는 주전자를 기울여 우선 사령관동지의 차잔에다 더운물을 부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차잔마다 물을 다 부을 때까지 기다리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이 물을 보니 안도에 있을 때 추운 방에서 밤늦게 책을 읽던 나에게 어머님이 더운물을 끓여주시던 일이 생각나오. 나는 그때 어머님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며 그 물을 마시고 더 열심히 공부하였소. 어머님들은 이와 같이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는것이요. 그러니 이 물은 소금물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들의 어머님이 끓여주신 그런 물로 생각하고 마신다면 매우 달것이요. 자, 그러면 새로운 힘을 얻기 위하여 모두다 함께 마십시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말씀을 듣는 순간 우리들의 가슴은 뭉클해졌다. 난관앞에 부닥칠 때마다 들려주시는 그이의 이러한 말씀은 실로 우리들에게 백배천배의 용기를 샘솟게 하는 혁명의 고귀한 량식으로 되였었다.
우리는 바로 사령관동지의 말씀에서 우리를 혁명적락관주의정신으로 키워주시는 따뜻한 어버이심정을 느꼈다.
또한 이 말씀은 우리들로 하여금 그 어떤 난관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강철의 의지를 가지게끔 하는 량식으로, 등대로 되였다.
우리는 그후 용기백배하여 목적지인 양목정자로 행군해갔으며 언제나 열망하여마지 않던 조국진군의 길에 오르게 되었던것이다.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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