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제국주의의 조선침략사(18)미제의 조선침략전쟁에 적극 가담하기 위한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책동미일제국주의의 조선침략사(18) 미제의 조선침략전쟁에 적극 가담하기 위한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책동
머리글 제1장 미일제국주의의 조선침략개시와 일제의 조선강점(1866~1905. 11) 제1절 미일제국주의의 조선침략개시와 반식민지적예속화책동 제2절 일제의 조선강점과 그를 지원한 미제의 죄행 제2장 조선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통치와 미제의 침략책동(1905. 11~1945. 8) 제1절 조선에 대한 일제의 간악한 식민지통치 제2절 일제강점시기 조선에 대한 미제의 침략책동 제3장 미제의 남조선강점과 조선전쟁도발, #공화국을 교살하기 위한 미제의 책동과 #일본군국주의의 조선전쟁가담책동(1945. 8~1953. 7) 제1절 미제의 남조선강점과 조선전쟁도발 제2절 조선전쟁시기 우리 공화국을 교살하기 위한 미제의 책동 제3절 일본군국주의의 재생재무장책동과 조선전쟁가담책동 1. 미제의 일본군국주의재생재무장책동 2. 미제의 조선침략전쟁에 적극 가담하기 위한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책동(18회)
2. 미제의 조선침략전쟁에 적극 가담하기 위한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책동 패망직후 우리 나라에 대한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적대적책동
- 일본군국주의자들은 패망후에도 우리 인민들에 대한 야수적인 학살만행을 계속 감행하였다.
○ 일본반동들은 전국각지에서 패망에 대한 앙갚음으로 학살만행을 감행하였다.
1945년 8월 20일 충청남도 아산에서 일제헌병들은 《일본이 패전한것은 너희들과 같은 자들이 있었기때문이다.》고 줴치면서 무고한 인민들을 학살하였다.
○ 일본반동들은 강제련행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학살만행도 감행하였다.
일제는 1945년 8월 24일 강제련행되였다가 귀국하는 조선사람들을 실은 해군수송선 《우끼시마마루》를 일본 교또부 마이즈루만에서 폭침시킴으로써 수많은 민간인들을 집단학살하였다. 이날 배에 탔던 7 000명이상의 조선사람들중 5 000명이상이 학살되였다.
침몰되기전의 일본해군수송선 《우끼시마마루》호
- 일본군국주의자들은 패주하면서 수많은 생산시설과 재부를 파괴략탈하였다.
일제는 공화국북반부지역의 64개 탄광, 178개의 광산을 침수시켰으며 총 배수량 9만 9 000t에 달하는 70척의 배를 침몰시키고 많은 배를 일본으로 끌고갔다. 경제기관운영에 필요한 중요기술문헌들을 소각하였으며 패망후 9월 초까지 《조선은행권》41억원을 람발시켰다.
- 일본군국주의자들은 패망직후부터 복수심에 사로잡혀 우리 나라에 대한 재침야망을 드러내놓았다.
-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미제의 침략전쟁준비에 끼여들어 한몫 보려고 하였다.
○ 일본반동들은 맥아더의 《11개조훈령》에 따라 1950년 2월 남조선괴뢰군과 일본침략군대의 《공동작전》까지 계획하였다.
○ 미제의 조선침략전쟁계획작성에도 적극 참가하였다.
《R-3》으로 알려진 미제의 침략전쟁계획은 《맥아더사령부》 제2부에 소속되여있던 전 일제침략군 작전참모들에 의하여 작성된것이였다. 당시 《맥아더사령부》의 장성들은 조선의 정치, 경제, 문화, 지리에 대해 알짜 무식쟁이들이였으나 일제의 이전 장성들은 이에 대하여 밝았고 또 조선과 만주, 연해주 등지에서의 전쟁경험을 가지고있었다. 이것을 고려하여 맥아더는 사령부안에 일본인 장성급의 비밀단체로서 《카토기관》과 《력사반》이라는것을 꾸려놓았다. 《카토기관》은 일본에서 전범자석방과 공직추방해제, 《적색숙청》 및 《경찰예비대》조작 등 군국화에 대한 일련의 대책안을 주로 연구하였다. 《력사반》은 《맥아더사령부의 전쟁사편찬》의 명목으로 핫또리대좌를 중심으로 조작되였는데 여기에는 일본군장성 20여명이 망라되여있었다. 이 단체에서는 전문적으로 조선전쟁계획을 연구하였다. 미제는 1949년의 《북벌》시도가 실패하게 되자 저들의 국가안전보장회의결정(미군의 전면적무력간섭계획)을 기초로 하고 《력사반》의 군사전략계획을 모체로 하여 조선침략전쟁도발계획인 《R-3》을 수정완성하였다.
미제의 조선침략전쟁에 적극 가담하기 위한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책동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선전쟁시기에 일본은 우리 나라를 침략하기 위한 미제의 병참기지로 복무하였습니다. 우리 나라를 무차별적으로 폭격과 포격한 수많은 미군비행기들과 함대들이 일본에 기지를 두고 출동하였으며 조선전쟁에 투입된 미제의 주요작전물자들과 전투기술기재들도 일본병참기지에서 나왔습니다. 일본군대와 함선들이 직접 조선전쟁에 참가하였다는것도 비밀이 아닙니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은 미제의 적극적인 비호밑에 일본군국주의의 재무장을 다그치면서 조선인민을 반대하는 침략전쟁에 적극 참가하였다.
- 일본군국주의자들은 미제가 조선전쟁을 도발하자 그에 적극 가담할데 대한 침략정책을 수립하였다.
○ 일본반동들이 조선침략전쟁에 가담한 목적은
• 미제에 편승하여 우리 나라에 대한 재침야망을 실현하며
• 전쟁물자를 생산공급하여 돈벌이를 함으로써 일본경제를 되살리려는데 있었다.
○ 이러한 목적으로부터 일본반동들은 조선전쟁에서 미제를 지원하고 그에 적극 협력할것을 정부의 정책으로 수립하였다.
• 일본반동정부는 1950년 7월 4일 내각회의에서 미제의 침략행동에 적극 협력할 《방침》을 승인하였으며 국내통신망과 특수부문에서 로동시간연장대책을 결정하였다.
• 총리 요시다는 《일본은 조선전쟁에 군대와 무기를 수송하여줌으로써 유엔과 합작할것이다.》고 공식표명하였다.
조선전쟁가담을 지시하는 이전 일본수상 요시다
-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조선전쟁시기 일본의 전령토를 미제침략군의 공격 및 보급, 수리기지로 송두리채 제공하였다.
○ 일본반동들은 일본의 전 령토를 송두리채 미제침략군의 공격 및 작전기지로 제공하였다.
• 일제는 미제침략자들에게 일본에 있는 공군기지들을 송두리채 제공하였다.
미제침략자들은 1950년 6월 26일부터 일본에 기지를 둔 《B-26》, 《B-29》폭격기를 출동시켜 조선의 평화적도시들과 농촌들에 대한 야수적폭격을 감행하였으며 수많은 수송기들을 동원하여 조선전선에 무기와 탄약을 공급하였다. 당시 오끼나와에 미제20공군이, 요꼬다에 제5공군이 배치되여있었으며 이밖에도 아오모리, 이다쯔께 등지에 수많은 미군공군기지가 있었는데 그곳들에서는 매일 평균 400여대의 미제침략군비행기들이 출격하여 우리 나라에 날아와 야만적인 폭격을 감행하였다.
• 미제침략자들에게 수많은 해군기지들도 제공하였다.
미제침략군 제7함대 함선들은 요꼬스까, 사세보, 구레, 마이쯔루, 시모노세끼를 비롯한 일본의 해군기지들에서 출발하여 조선의 동서해안을 봉쇄하려고 미친듯이 돌아쳤으며 연안의 도시들과 평화적촌락들에 대한 폭격만행을 감행하였다.
• 일본반동들은 일본의 전령토를 미제침략군 지상부대의 출동기지로 제공하였다.
미제침략군 제8군관하 24사단, 25사단, 7사단, 1기병사단들은 전쟁도발이전부터 일본의 규슈와 간또, 혹가이도 등지에 기지를 두고있다가 조선전선에 출동하였다. 그리고 《동맹국》과 추종국가군대들도 모두 일본령토안의 군사기지들에서 대렬편성을 하거나 훈련을 한 다음 조선전선에 투입되였다. 일본반동정부는 1952년 7월 미국과 《군사시설 및 군사구역사용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여 조선침략전쟁에 유리한 1 280여개의 군사기지와 각종 시설들을 미제침략군에게 넘겨주었다.
○ 일본반동들은 전 일본땅을 미제침략군의 보급기지, 병참기지로 제공하였다.
초보적인 통계자료에 의하더라도 일본독점재벌들의 거의 전부인 869개의 공장, 기업소들이 군수생산에 인입되였다.
이 시기 일본독점재벌들은 각종 포와 로케트탄, 여러가지 탄알, 기관총, 보총을 비롯한 무기와 다량의 군수품을 생산하여 미제침략군에게 제공해주었으며 비행기와 군함, 땅크 등을 수리해주거나 조립하여 미제침략자들에게 넘겨주었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은 각종 무기의 생산과 수리뿐아니라 미국에서 생산된 여러가지 무기들을 조선의 지형조건에 맞게 개조하여 미제침략군에게 공급해주었다. 일제는 105mm곡사포를 산이 많은 조선의 지형조건에 맞게 개조하여 미제침략군에게 대량공급하였으며 《M-4》, 《M-3》땅크에 장비된 75mm평사포를 76mm평사포로, 《M-15A》곡사포의 37mm구경을 40mm로 고쳐 미제침략군에게 수많이 넘겨주었다. 이 시기 일본에서 생산한 군수품은 무려 25억 4 600만US$에 달하는 매우 방대한 량이였다.
- 일본군국주의자들은 미제의 조선침략전쟁에 직접 참가하였다.
○ 조선침략전쟁에 일본침략군을 직접 참가시켰다.
1950년 7월 27일 로이터통신에 의하면 조선전쟁에 참가한 일본침략군수는 이 시기에 벌써 2만 5천명이나 되였다.
• 일본군국주의자들은 1950년 9월 미제의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였다.
이전 일본《황군》출신의 일본해군장교들은 인천상륙작전계획작성에 직접 참가하였으며 상륙작전시에는 수많은 침략무력을 수송해주었다. 맥아더의 지시에 따라 일본반동정부는 일본의 여러 조선소들에서 고장난 땅크수송선들을 수리하도록 하는 한편 그것들을 대형군수기재들을 운반할수 있게 개조한 다음 미제침략군의 인천상륙작전에 동원시켰다. 이때 동원된 일본함정은 50여척이나 되며 수천명의 일본 《해상보안청》군인들이 참가하였다. 또한 일본군국주의자들은 30여척의 소해정을 파견하여 인천앞바다의 기뢰를 해제하고 미제침략군 제7함대 함선들의 수로를 안내해주도록 하였다. 또한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인천앞바다의 지형조건, 밀물과 썰물의 심한 차이에 의하여 생기는 상륙장의 변동상태를 비롯한 인천앞바다의 해상과 지형조사자료들을 미제에게 넘겨주었다.
• 일본군국주의자들은 미제의 인천상륙작전뿐아니라 원산, 군산, 해주, 남포 해역에서 기뢰소해작전에 참가하였다. 소해작전참가자들에게는 거액의 보수가 지불되였다.
이렇듯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전쟁도발직후부터 그 어느 추종국가보다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은 침략무력을 파견하였다.
- 일본군국주의자들은 미제침략군의 전시수송을 도맡아 보장해주었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이 시기 미제침략군의 전선수송을 보장하기 위하여 30만t에 달하는 해상수송선단을 동원하였으며 철도와 자동차를 모조리 제공하였다. 1950년에 일본철도로 수송된 미제침략군의 수는 무려 904만여명에 달하였다. 이것은 태평양전쟁시기 저들의 침략무력을 수송한것보다 훨씬 더 많은 수자였다. 군수물자수송에서도 1951년에 957만여t으로서 1941년의 저들의 군수물자수송량과 대등하였다. 1950년 12월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인민군대의 반격에 의하여 장진에서 녹아난 미제1해병사단, 7보병사단의 패잔병들이 흥남항으로 도망칠 때 저들의 소해정과 땅크상륙정을 비롯한 수많은 함선들을 동원하였다.
○ 일본반동들은 미제의 세균전에도 참가하였다.
• 지난날의 전범자들인 이시이 시로, 와까미쯔 지로, 기라노 마사꾸라 등 세균전문가들을 조선에 들여보내여 극악한 범죄행위를 감행하게 하였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은 미제가 조선침략을 위한 《A.B.C》계획을 작성할 때 이미 그에 따르는 첩보계획과 함께 세균전계획을 세워 미제에게 넘겨주었다. 그후 이 계획은 미제침략군에 의하여 일부 수정되여 조선침략전쟁에 적용되였다.
• 수많은 세균무기를 연구생산하여 미제에게 넘겨주어 그들의 세균전을 도와주었다. 일본세균전범자들은 도꾜근방의 세균무기생산공장과 가나가와현 사가하라의 세균무기연구소를 비롯한 여러 세균무기생산기지들에서 각종 세균무기를 연구하고 생산하여 미제침략군에게 넘겨주었다.
• 하네다, 이다쯔께, 이와구니, 오끼나와를 비롯한 일본의 여러 비행장들을 미제침략군의 세균무기공격기지로 제공해주었다.
이처럼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전쟁첫날부터 온 나라를 미제의 침략기지로 내여맡기고 있는 힘껏 미제를 지원하였을뿐아니라 미제가 만신창이 되여 허우적거리고있던 시기에 와서까지도 그를 더욱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위하여 미친듯이 날뛰였다.
참으로 미제는 일본군국주의를 재생재무장시켜 우리 인민의 원쑤로 등장시킨 흉악한 원쑤이며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조선전쟁시기 미제침략자들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우리 인민을 반대하여 악랄하게 책동한 우리 인민의 철천지원쑤이다.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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