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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제국주의의 조선침략사(17)

미제의 일본군국주의재생재무장책동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23/09/29 [11:49]

미일제국주의의 조선침략사(17)

미제의 일본군국주의재생재무장책동

프레스아리랑 | 입력 : 2023/09/29 [11:49]

미일제국주의의 조선침략사(17)

 

머리글

 

1장 미일제국주의의 조선침략개시와 일제의 조선강점(1866~1905. 11)

 

1절 미일제국주의의 조선침략개시와 반식민지적예속화책동

 

1. 미일제국주의의 조선침략개시(1)

 

2. 미일제국주의의 범죄적공모결탁과 첫 예속적불평등조약의 강요(2)

 

3. 조약강요후 미일제국주의의 반식민지적예속화책동(3)

 

2절 일제의 조선강점과 그를 지원한 미제의 죄행

 

1. 일제의 대규모적무력침공과 조선에 대한 독점적지배실현책동(4)

 

2. 일제의 로일전쟁도발과 을사5조약의 날조를 통한 조선강점(5)

 

3. 일제의 조선강점을 적극 지원한 미제의 죄행(6)

 

2장 조선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통치와 미제의 침략책동(1905. 11~1945. 8)

 

1절 조선에 대한 일제의 간악한 식민지통치

 

1. 일제의 정치적폭압통치(7)

 

2. 일제의 경제적략탈(8)

 

3. 일제의 조선민족말살책동(9)

 

2절 일제강점시기 조선에 대한 미제의 침략책동

 

1. 일제의 식민지통치에 대한 미제의 지원책동(10)

 

2. 조선에서 침략적지반을 닦기 위한 미제의 책동(11)

 

3. 태평양전쟁시기 조선에 대한 식민지화실현책동(12)

 

3장 미제의 남조선강점과 조선전쟁도발, #공화국을 교살하기 위한 미제의 책동과 #일본군국주의의 조선전쟁가담책동(1945. 8~1953. 7)

 

1절 미제의 남조선강점과 조선전쟁도발

 

1. 미제의 남조선강점과 식민지예속화책동(13)

 

2. 미제의 조선침략전쟁준비와 도발(14)

 

2절 조선전쟁시기 우리 공화국을 교살하기 위한 미제의 책동

 

1. 미제의 군사정치적교살책동(15)

 

2. 미제의 야수적인 인민학살과 파괴략탈만행(16)

 

3절 일본군국주의의 재생재무장책동과 조선전쟁가담책동

 

 

1. 미제의 일본군국주의재생재무장책동(17)

 

 

1. 미제의 일본군국주의재생재무장책동

 

 

미제국주의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후 일본을 점령한 첫날부터 일본을 군국화하지 말데 대한 국제협정을 무시하고 일본군국주의를 되살리는 길에 들어섰습니다라고 김정일 동지는 교시하였다.

 

 

 

미일제국주의의 제2차 공모결탁

 

- 미제는 제2차 세계대전이후 일본의 민주화에 대하여 떠들어댔으나 실제적으로는 일본을 점령한 첫날부터 일본을 군국화하지 말데 대한 국제협정들을 무시하고 일본군국주의와 새로운 공모결탁을 실현하였다. 이것을 미일제국주의의 제2차 공모결탁이라고 한다.

 

- 미일제국주의자들이 제2차 공모결탁을 통하여 노린 침략적목적

 

미제는 일본을 손아래동맹자로 키워 아시아침략과 세계제패야망실현을 위한 돌격대로 써먹으려고 하였다.

 

 

 

일본의 전후처리를 규정한 포츠담선언(1945. 7. 26)에서는

 

1. 련합국이 일제를 타격하여 무조건 항복을 받아낸다는것

 

2. 일본을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일본의 전쟁세력을 제거한다는것

 

3.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하고 전범자들을 처단한다는것

 

4. 일본군수산업을 해체하고 일본을 민주주의적인 국가로 발전시킨다는것을 규정하였다.

 

 

 

그러나 미제는 제2차 세계대전직후 일본을 군사적으로 점령하게 된 유리한 조건을 리용하여 어제날의 적국을 무장해제하고 정치, 경제, 군사적 속국으로 전변시키며 아시아의 반공보루, 대륙침략기지로 만드는것을 저들의 대일정책으로 삼았다.

 

미제가 저들의 세계제패야망을 일본을 통하여 실현할수 있다고 본것은;

 

우선 일본군국주의자들의 복수주의야망을 저들의 아시아침략에 손쉽게 리용할수 있다는것 즉 일본이 반공사상이 강하고 아시아나라들(조선, 중국)과 이전 쏘련을 극도로 적대시하고있었으므로 대륙침략기지, 공산주의의 방파제로 될수 있다는 점이였다.

 

또한 일본이 군사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고 발전된 공업과 야만적인 침략전쟁경험, 풍부한 인적자원을 가지고있는것으로 하여 저들의 세계제패야망을 실현하는데서 침략적군사기지, 병참기지, 대포밥공급원천지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보았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은 미제를 등에 업고 재생재무장하여 대동아공영권의 옛꿈을 실현하려고 하였다.

 

 

 

2차 세계대전직후 미제의 일본군국주의재생책동

 

- 미제는 일본군국주의를 재생시키기 위하여 일본에서 왜왕을 우두머리로 하는 군국주의적정치기구와 세력을 그대로 보존하였다.

 

미제는 일본군국주의의 정치적기둥인 왜왕제도를 그대로 보존하였다.

 

최대의 전범자인 왜왕을 처벌하고 왜왕제도를 없애는것은 군국주의의 사상정치적지반을 허물어버리기 위한 근본요구였다. 왜왕제도자체를 없애야 군국주의의 사상적기초를 허물고 정치적기둥을 뿌리뽑을수 있으며 나아가서 그 재생을 철저히 막을수 있었다.

 

그러나 미제는 일본에서의 왜왕에 대한 뿌리깊은 환상을 리용하여 일본침략군대를 빨리 재생시킬 타산밑에 왜왕을 평화주의자, 민주주의자로 찬양하면서 그를 극동군사재판에서 제외시키고 왜왕중심적인 정치제도를 그대로 보존하였던것이다. 미제는 왜왕은 기계화부대 20개 사단보다 더 나은 전투력이며 왜왕의 명령 하나면 200~300만의 군대를 즉시 모집할수 있다.고 떠벌이였다.

 

미제는 전범자들과 파쑈관리들에게 형식상 가했던 형집행공직추방을 취소하여 군국주의세력을 그대로 보존하였다.

 

미제는 19481224일 전 군수상 기시 노부스께, 전 대동아상 아오끼 가즈오, 전 내상(내무상) 아베 겡끼를 포함하여 19명의 전범자들을, 195011월에는 시게미쯔를 비롯한 전범자들을 석방하였으며 수많은 파쑈관리들을 공직추방에서 면제시켰다.

 

미제는 반동적인 내각과 파쑈경찰관료기구를 조직하여 낡은 통치기구를 그대로 보존하였다.

 

미제는 수십만의 전범자들과 파쑈관리들을 재생되는 군국주의의 골간으로 내세웠고 파쑈경찰관리기구도 그대로 보존하였다. 그리고 황군해산시킨다고 하였으나 그 골간을 경찰경비대를 비롯한 위장된 군사조직에 감추어 보존시키면서 오히려 그 힘을 더 길러냈다. 그리하여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56 000명이였던 경찰이 1946년에는 93 000명으로, 1948년에는 무려 14만 수천명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 미제는 일본군국주의를 재생시키기 위하여 군국주의의 온상인 일본독점재벌들을 그대로 보존하였다.

 

일본독점재벌은 군국주의의 경제적지반이고 온상이였으며 그 주도적세력이였다. 따라서 일본독점재벌의 해체는 군국주의청산의 기본조건의 하나였다. 그렇기때문에 포츠담선언을 비롯한 국제협정들에서는 일본독점재벌의 해체와 군수산업의 금지를 규정했던것이다. 그러나 미제는 일본에서 침략적인 군사경제적잠재력을 마련하기 위하여 독점재벌들을 해체하지 않았을뿐아니라 오히려 그 보존에 더 급급하였다.

 

미제는 독점재벌의 해체를 그 재산을 분산처분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진행하였다.

 

 

 

 

                                                                  미제의 비호밑에 되살아난 일본독점재벌들

 

 

 

1945116일 미제는 형식상 일본독점재벌의 해체를 선포하였다. 이에 따라 미쯔이, 미쯔비시, 스미모또, 닛산 등의 재산동결이 선포되였으나 분산처분되였기때문에 그 재산이 은페보존되였다.

 

미제는 제한된 범위에서 실시하였던 재벌해체마저도 중지하고 보호육성정책에로 넘어갔다.

 

미제는 19483월 지난날 일제의 침략전쟁을 뒤받침한 325개의 독점기업체들을 해체대상으로 규정하였으나 5~10월사이에 그것을 100여개로 축소하였으며 그후 다시 28개만 해체한다고 하고 그나마도 실행하지 않았다. 미제는 일본의 배상금을 체계적으로 줄여주었으며 19495월에는 배상에 충당하기로 되였던 모든 일본공장들의 반출을 정지하도록 하였다. 여기에는 96개의 륙해군병기공장들과 301개의 비행기제조관계공장을 포함한 845개의 군수공장들이 있었다.

 

 

 

조선전쟁시기 미제의 일본군국주의재생재무장책동

 

일본군국주의를 재생재무장시키기 위한 미제의 책동은 조선전쟁시기에 더욱 강화되였다.

 

미제는 조선전쟁도발후 일본군국주의를 조선침략에 광범히 리용하려는 야망으로부터 그 재생재무장을 공공연히 다그치는데로 나아갔다.

 

- 미제는 일본의 침략군대를 되살리기 시작하였다.

 

195078일 맥아더는 75 000명의 경찰예비대를 창설하고 8천여명의 해상보안대를 증강할것을 일본반동정부에 지시하였다. 맥아더의 지시에 따라 일본반동정부는 810일에 경찰예비대령을 공포함으로써 일본침략무력의 재생을 세상에 선포하였다. 경찰예비대의 수는 195210월에 이르러 12만명에 달하였으며 그 명칭도 보안대로 고쳐졌다.

 

- 미제는 일본독점자본의 부활에도 새로운 박차를 가하였다.

 

미제는 일본독점재벌들에 조선전쟁과 관련한 특수주문을 늘여 활력을 부어주었으며 19523월에는 형식적으로 가했던 무기생산금지령을 페기시켰다. 그리하여 전쟁기간 일본의 공업은 그 생산이 70%나 증가되였고 제2차 세계대전시기의 수준을 회복하게 되였다.

 

- 미제는 일본군국주의의 재생재무장을 합법화하고 침략적인 미일군사동맹을 조작하였다.

 

195198대일단독강화조약을 조작하였다.

 

그 목적은 일본반동들에게 행동자유를 주어 재생재무장을 합법화하며 일본침략무력을 조선전쟁에 끌어들이려는데 있었다.

 

○ 《미일안전보장조약을 통하여 미일군사동맹을 조작하였다.

 

 

 

                                                                                《미일안전보장조약체결식

 

 

 

미제는 대일단독강화조약에서 일본과 제3국간에 체결된 조약에 따라 일본령토에 외국군대를 주둔 또는 보존하게 되는것을 방해할수 없다는 규정을 박아넣었다. 그후 미일안전보장조약에서는 일본이 그 본토와 그 주변지역에 륙해공군을 주둔시킬 권리를 미국에 제공한다는 항목을 규정하였다.

 

그리하여 미제는 이 조약들을 통하여 일본의 전령토와 인적, 물적자원을 조선침략전쟁에 마음대로 동원리용할수 있게 되였으며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아시아에서 미제가 도발하는 침략전쟁에 자동적으로 가담할 의무를 지니게 되였다.

 

 

 

 

이처럼 미제는 제2차 세계대전이후 저들의 침략적야망으로부터 여러가지 교활한 방법으로 일본군국주의재생재무장화책동에 미쳐날뛴 흉악한 원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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