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수 할머니, 일본군영혼결혼식 진실은 무엇인가

일제만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 국민대중이 뼈 속까지 새기는 계기가 되길

프레스아리랑 | 입력 : 2020/07/25 [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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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청 기자  
 
 
이용수 할머니의 일본군과 영혼결혼식에 대한 것은 국내 <한겨레신문>은 없다는 논조고, 국외 <대만의 현지 신문>은 그날의 사실을 생생하게 있었다고 중국어로 증언하고 있다. 
 
이번 2020년 사태를 돌아보면 무엇보다 이용수 할머니의 활동과 배후에 의혹을 주는 진실규명이 되지 않고 사실 확인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부정적 폭로기자회견이 되었다는 것이다. 
 
특정한 어느 쪽 <정의연>과 국회 윤미향 의원만 혐의가 있는 것처럼 검찰의 압수수색 조사를 진행하고 언론사를 통해 여론화했다. 이는 시민의 알권리 분별력에 문제가 되고 의구심이 가기에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양쪽을 공정한 압수수색조사해야 상황의 진실규명을 제대로 파악 할 수 있을 것이다. 
 
<1998년 연합뉴스 '위안부영혼결혼식' 중국 대만 언론사 기사주장을 참고>
 
"이용수 할머니는 왜, <정의연>과 국회 윤미향 의원을 공격했을까?" 긴 말이 필요 없다. 1998년 연합뉴스에 실린 '위안부영혼결혼식'이란 기사와 이 기사를 읽어보면, 풀리지 않던 의문이 술술 풀릴 것이다. 그냥 민족의식 없는 정도가 아니다. 
 
기사 행간까지 읽을 수 있는 사람이면 우파 음모까지 넉넉히 보일 것이다.
 
일제만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 국민대중이 뼈 속까지 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아래 글은 페친 민*호씨가 올린 글이란 것을 밝힌다. 
 
대만 <연합보>와 도서 <출외(出外)>에 실린 글은 우리를 절망케 한다.
 
不渝的情 真心的愛 戰爭的殘忍 
韓籍慰安婦半世紀等待 昨完成冥婚 來台償宿願
 
변하지 않는 애정, 진심 어린 사랑, 전쟁의 잔혹함, 한국 국적 위안부, 
반세기 기다려 어제 영혼결혼식을 마쳐, 대만에 와 소원 이뤘다. 
 
為著一段約五十年的誓約,
二次世界大戰期間被日本軍方強徵的韓國籍慰安婦李容洙,
昨天穿著白色喪服,至新竹空軍基地仁愛樓前的草地,
即日本自殺飛行中隊~神風特攻隊「下沙崙」慰安所的故址,
以韓國「冥婚」習俗,完成她和特攻隊員長谷川的婚禮,
 
이차세계대전 시기 일본군 측에 강제로 끌려온 한국 위안부 이용수(李容洙), 약 50년의 맹세 한 단락을 이루기 위해 어제 흰색 상복을 입고 
대만 신주(新竹, 신죽) 공군기지 인애루(仁愛樓) 잔디밭 앞, 
즉 일본 자살비행중대-가미카제특공대 ‘시아샤룬(下沙崙, 하사륜)’ 
위안소 옛터에 도착, 한국 ‘명혼(冥婚, 영혼결혼식)’ 풍습에 따라, 
그녀와 특공대원 하세가와(長谷川)의 혼례를 완성했다.
 
她說,「我相信死後可以和長谷川在天上相見,
結為夫妻,過著快樂甜蜜的生活。」
 
그녀는 "나는 사후에 하늘나라에 있는 하세가와를 만나 
부부가 되어 즐겁고 달콤하게 살 것으로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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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十一歲的李容洙說,年她歲時,在一個睡夢的夜晚,
突然被日軍抓走,送往北朝鮮後,又送到中國大連、
上海等地,最後輾轉來到台灣,與另四名韓國慰安婦抵達 
新竹市下沙崙慰安所,當時所內共有名慰安婦。
 
일흔한 살의 이용수는 말했다, 그녀가 어렸을 때, 
잠을 자고 있는 야밤에 갑자기 일본군에 끌려가, 
북조선으로 보내진 뒤 중국 다롄(大連, 대련), 
상하이(上海, 상해) 등지를 전전하다가 
마지막에 대만에 이르렀고, 다른 4명의 한국 위안부와 함께 
신주시(新竹市) 시아샤룬(下沙崙) 위안소에 도착했는데, 
당시 위안소 내의 유명한 위안부였다.
 
她說,慰安婦與平均年齡二十出頭的神風特攻隊員都是離鄉背井之人,
異地相遇,年輕的男女很容易傾訴衷曲,因此她結識長谷川後,
二人情投意合,海誓山盟,並在長谷川出死亡任務之前,
一起度過了這一生中最後、最美的三天。
 
그녀는 말했다. 위안부와 평균 나이 20대 초반의 가미카제 특공대원들 
모두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다. 
타지에서 서로 만난 젊은 남녀가 속마음을 털어놓기 매우 쉽다. 
그래서 그녀가 하세가와를 알게 된 뒤에 두 사람은 한마음이 되었고, 
사랑을 굳게 맹세했으며, 하세가와가 죽음의 임무에 나서기 전에 이 일생 가운데 마지막, 가장 아름다운 3일을 함께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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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谷川在這次任務中一去不回,但李容洙為了長谷川終身不嫁,戰後她不斷的向聯合國人權單位及日本友人,表明要回台灣新竹找尋慰安所的心願。去年八月,她在中研院研究員胡台麗幫助下,抵達新竹空軍基地,但不得其門而入。
 
하세가와는 이번 임무에서 한 번 가서 돌아오지 않았지만, 
이용수는 하세가와를 위해 평생 시집을 가지 않았다. 
그녀는 전후 연합국 인권위와 일본 친구들을 찾아가 
대만 신주(新竹) 위안소를 찾아내는 염원을 밝혔다. 
작년 8월, 그녀는 대만 중앙연구원(中央研究院) 연구원 
후타이리(胡台麗) 도움으로 신주공군기지에 도착했지만 들어갈 수 없었다.
 
昨天上午十時許,李容洙進入基地,由副聯隊長金乃傑做簡報,
並經農民邱阿田的協助指認,找到慰安所故址,可惜房已拆,
小山坡也已剷平。李容洙突然詢問可以舉辦某種儀式嗎 
李容洙即拿出從韓國帶來的一對男女布偶,
在白紙上寫著心愛戀人神風特攻隊飛行員長谷川與 
「無名仙女」的名字,放在新移植的大榕樹下,按韓國冥婚習俗,
在布偶旁點起白蠟燭,上香禱告後,完成一場因戰爭而不能實現的婚約。
 
어제 오전 10시경 이용수는 기지에 들어가 부연대장 진나이지예(金乃傑)의 브리핑과 농민 치오아귀엔(邱阿田)의 안내로 위안소의 옛터를 찾았지만 안타깝게도 건물은 헐렸고 언덕은 평평하게 깎였다. 
 
이용수는 갑자기 무슨 의식을 거행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용수는 곧 한국에서 가져온 남녀인형 한 쌍을 꺼내 사랑하는 연인 가미카제 특공대 비행원 하세가와와 ‘무명 선녀’ 이름을 적은 백지위에 두었다가, 새로 심은 큰 대만고무나무 밑에 놓고, 한국의 영혼결혼식 풍속에 따라 인형 옆에 촛불을 켜고 분향 기도한 뒤 전쟁으로 실현되지 못한 혼약(婚約)을 이루었다.
 
李容洙認為在風燭殘年的歲月,得以在昔日的慰安所前,
完成與長谷川至死不渝的盟約,宿願既償,立即開懷而笑,
並換了洋裝,這時她認為自己已是長谷川口唱日本歌謠中 
「長谷川容子」,其中長谷川是夫姓,容子是長谷川替她取的名字。
 
이용수는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지난날의 위안소 앞에서 
하세가와와의 죽을 때까지 변함없는 맹약을 완성한 것에 이미 숙원을 이뤘다며 금세 마음을 열고 활짝 웃었고, 양장으로 바꿔 입었다. 
 
이때 그녀는 자신이 이미 하세가와가 부른 일본 가요 중 <하세가와 요코(長谷川容子)>라 생각했는데, 그 가운데 하세가와(長谷川)는 남편의 성, 요코(容子)는 하세가와가 그녀를 위해 지어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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