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연재】 나와 주체사상과의 대화
제 1장 주체사상의 창시와 전일적 체계를 갖춘 학설로의 심화발전
제2장 김일성주의의 견인력의 원천
제 3장 인간위주의 철학적 세계관의 독창성문제
나: 이번에는 인간위주의 철학적 세계관의 독창성문제에 대하여 논의해 보았으면 합니다. 이남의 일부 ML 론자들과 일부 문필가들은 주체의 철학적 세계관의 중요한 문제들의 독창성과 정당성을 부정하고 맑스-레닌주의의 ‘틀’에 맞추어 해석하려고 무척 고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 그렇습니다. 이남의 일부 ML 론자들과 일부 문객들은 주체철학의 근본문제를 맑스-레닌주의 철학의 근본문제에 용해시키고 주체의 인간론을 유물변증법적 인간론에 매몰시키며 세계에 대한 주체적 관점, 입장을 "주의설," "실용주의"로 매도하기 위해 온갖 궤변을 조작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 문제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논의해 보겠습니다.
제 1절 인간위주의 철학의 근본문제
나: 이남의 일부 ML 론자들과 문필가들은 주체철학의 독창성을 부정하기 위한 목적에서 주체철학의 근본문제에 대하여 적지않게 비판하는 논의를 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선 개괄적으로 주체철학의 근본문제에 대하여 비판하는 데서 어떤 논의가 있는지요.
주: 이남의 일부 ML 론자들과 문객들은 주체철학의 근본문제, 즉 세계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문제>가 철학의 근본문제로 될 수 없다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 논의들을 개괄해 보면 우선 철학의 근본문제 개념의 본의에 대한 왜곡을 통해 주체철학의 근본문제를 부정하는 논의를 들 수 있고, 다음으로 ‘철학의 중심문제 이동설’을 창안하여 <물질-의식의 문제>는 철학의 영원한 근본문제이고 <세계-사람의 문제>는 오늘의 시대가 제기하는 철학의 중심적인 문제라는 논의이며, 또한 주체철학의 근본문제는 ‘관념론적 문제설정’이라고 주장하는 논의들을 들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여러 논의들이 ML 론의 모자를 쓴 ‘사상가들,’ ‘운동가들’에 의하여 맑스-레닌주의에서 설정한 철학의 근본문제의 ‘틀’ 속에서 주체철학의 근본문제가 해소되는 논리적 궤변이며 주체철학의 독창성이 부정되고 주관적 관념론으로 왜곡되는 논리적 궤변이라는 데 있습니다.
(1) 철학의 근본문제 개념의 본의에 대한 논의
나: 그러면 먼저 이남의 일부 ML 론자들과 문필가들이 <철학의 근본문제> 개념의 본의를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부터 말씀해 주시지요.
주: 이남의 일부 ML 론자들과 문필가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철학의 근본문제에 대한 개념의 본의를 왜곡한 데 기초하여 주체철학의 근본문제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철학의 근본문제란 철학이 무엇보다도 먼저 풀어야 할 기초적인 문제를 말한다."(1) "이것이 주체철학의 근본문제의 본의에 대한 이해이다."(2) 라고 임의로 규정하여 놓고 선차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는 세계-사람 문제가 아니라 물질- 의식의 문제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허상과 싸우는 “동키호테식 사고"라고나 해야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체철학은 선차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를 철학의 근본문제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철학의 근분문제란 철학사상을 전개하는 데서 선차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제기되고 해명되어야 할 문제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철학사상을 전개하는 데서 선차적으로 제기하고 해명해야 할 문제라고 해서 그것이 모두 그 철학의 근본문제로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실례로, 맑스주의 이전 철학에서는 근본문제의 개념을 고유한 의미를 가진 철학적 개념으로 정립하지 못하였습니다. 지난 시기에는 철학의 근본문제가 개개의 철학이 가장 중요하게 고찰한 중심적인 문제를 의미하는 용어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주로 존재론을 고찰한 철학에서는 세계의 시원문제가, 주로 인식론을 고찰한 철학에서는 인식의 가능성이나 방법론 문제가, 주로 윤리도덕 문제를 고찰한 철학에서는 인간의 도덕적 본성이나 윤리적 가치문제가 <근본문제>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매개 철학이 주로 고찰한 문제가 당대에 전면에 나선 문제일 수도 있고 철학자의 주관적 욕구나 지향에 따라 설정된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가 철학의 근본문제로 될 수는 없습니다. 만약 매개 철학이 다 자기의 고유한 근본문제를 가지며 그것이 의당한 것으로 될 수 있다면 철학은 고유한 대상을 가진 과학으로서가 아니라 개별적인 철학자들이 마음대로 선택한 문제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으로 밖에 될 수 없습니다.
일부 ML 론자들은 철학의 근본문제에 대한 주체철학의 이해를 “선차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로 임의로 귀결시켜 놓고 맑스주의 이전시기의 철학자들이 제멋대로 설정한 중심문제와 같은 것으로 주체철학의 근본문제를 ‘격하’시키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강동일은 연애박사가 연애를 철학의 근본문제로 수전노가 세계에서 돈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철학의 근본문제로 제기할 수 있다(3)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매개의 철학이 당대에 전면에 내세웠던 문제가 중심적인 문제로 설정될 수도 있고, 철학자의 주관적 욕망에 따라 설정된 문제가 선차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로 될 수 있으니 선차적으로 풀어야 할 모든 문제가 다 철학의 근본문제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철학의 근본문제는 철학의 다른 모든 문제를 푸는 데서 사상이론적 및 방법론적 기초로 되는 문제라고 정의내릴 수 있습니다. 즉 철학의 성격과 내용, 근본특징을 규정하는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 그러면 철학의 근본문제가 다른 철학적 문제를 푸는 데서 사상이론적 및 방법론적 기초로 되는 문제라는 시각에서 본다면 그것이 단순히 선차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은 극히 일면적이고 부정확한 이해라고 여겨집니다.
주: 그렇습니다. 그러나 선차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가 주체철학이 규정한 철학의 근본문제에 대한 이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주체철학에 주관관념론의 감투를 씌워보려는 의도적인 시도라고 밖에 달리 볼 수 없습니다.
나: 이남의 일부 ML 론자들이 맑스-레닌주의 철학의 근본문제의 ‘틀’에 맞추어 철학의 근본문제에 대한 개념의 본의를 해석하려는 주장은 어떤 것인지요.
주: 그것은 우선 철학의 근본문제는 물질과 의식의 관계문제, 세계의 시원에 관한 문제로만 보아야 한다는 주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남의 일부 ML 론자들은 “존재와 사유, 물질과 의식중 어느 것이 선차적인가 즉 무엇이 시원적이고 본원적인가 하는 것이 근본문제"(4)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철학의 근본문제에 대한 맑스-레닌주의적 견해를 액면 그대로 수용한 일면적이고 교조적인 주장입니다.
맑스-레닌주의 철학은 모든 철학에는 공통적으로 취급하는 문제, 즉 그 해결이 철학의 이론적 출발점으로 되는 문제가 있다는 인식에 기초하여 철학의 기본문제의 본의를 정립하였습니다. 맑스-레닌주의 철학은 물질과 의식의 상호관계문제가 세계의 시원을 밝히는 문제로서 그 해명이 세계관을 세우는 데서 이론적 출발점으로 되며 물질과 의식의 범주가 세계에서 가장 일반적인 범주이며 따라서 그 상호관계는 세계에서 가장 본질적이고 일반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다고 보았으며 철학의 당파성, 유물론과 관념론을 가르는 기준으로 된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나: 그러면 철학의 근본문제의 개념에 대한 맑스-레닌주의 철학의 이해가 가지는 한계성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주: 철학의 근본문제의 개념에 대한 맑스-레닌주의 철학적 이해의 한계성은 첫째로 물질과 의식의 상호관계 문제가 세계의 시원과 의식의 원천을 해명하는 철학의 이론적 기초로는 될 수 있어도 운동관의 직접적 이론적 기초로는 될 수 없고 또한 세계를 개조변혁하는 인간활동의 방법론적 기초로도 될 수 없으며 인간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세계관의 사상적 기초로도 될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여 물질과 의식의 상호관계 문제는 인간의 운명개척의 방도를 해명하기 위하여 선차적으로 풀어야 할 중요한 문제이지만 철학의 사상이론적 및 방법론적 기초로는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물질과 의식의 상호관계 문제는 철학적 대립의 인식론적 기초를 밝힐 수는 있어도 그 대립의 사상적 기초를 직접적으로 밝힐 수 없으며 또 그것이 곧 철학에서 진보성과 반동성의 기본척도로는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유물론과 관념론을 철학에서 진보성과 반동성의 기준으로 보게 된 것은 역사발전에서 선진적 계급은 언제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며 반동계급은 현존체제를 유지보존하기 위하여 현실적 제관계와 운동발전의 합법칙성을 왜곡하는 데 이해관계를 가진다는 이론적 분석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물론 철학적 대립의 기초를 한 측면에서 밝힌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철학의 당파성은 벌써 인식론의 문제를 초월하고 있습니다. 즉 유물론적 이론을 주장하면서도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자주성의 실현을 억제하고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철학, 사회주의로부터 자본주의의 복귀를 설교하는 철학이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신을 믿는 관념론적 종교철학이 자본주의의 비인간성을 폭로하고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것을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물질과 의식의 상호관계 문제를 전제로 자체 속에 포섭하면서도 더 고차원적인 문제에 의해서만 철학의 당파성, 진보성과 반동성이 규정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여 줍니다.
김정일총비서께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시었습니다.
“주체사상은 세계의 시원문제가 유물론적으로 밝혀진 조건에서 세계에서의 사람의 지위와 역할 문제를 철학의 근본문제로 새롭게 제기하고 세계의 주인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에 해답을 주었습니다.”(5)
주체철학은 철학의 근본문제가 철학의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는 사상이론적 및 방법론적 기초로 되는 문제로 규정하고 그것이 바로 세계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 문제임을 명시하였습니다.
주체철학은 세계의 시원문제를 해명한 것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인간의 지위와 역할을 밝히기 위한 전제로 된다는 것을 분명히 지적하면서 인간을 물질세계의 단순한 한 부분이 아니라 세계의 지배자, 개조자로 내세움으로써 세계에서 차지하는 인간의 지위와 역할에 관한 문제를 철학의 근본문제로 정립하였습니다. 세계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에 관한 문제는 철학의 근본문제에 대한 개념의 본의에 전적으로 맞는 철학의 근본문제의 과학적 정립으로 됩니다.
나: 그러면 세계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에 관한 문제가 왜 철학의 근본문제로 될 수 있는지를 간단히 요약하여 말씀해 주시지요.
주: 그것은 첫째로 세계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 문제가 세계관의 사상이론적 및 방법론적 기초로 되는 문제로 되기 때문입니다. 사상적 기초의 시각에서 본다면 인간의 근본요구와 이해관계는 세계의 지배자, 개조자, 그리고 자기운명의 주인이 되어 자기운명을 자신의 힘으로 개척하려는 데서 표현되며, 이론적 기초의 시각에서 본다면 세계의 가장 기본적이며 일반적인 관계가 세계와 인간의 관계문제이며 그것에 의하여 세계의 존재와 운동발전의 합법칙성이 과학적으로 해명된다는 것입니다. 방법론적 기초의 시각에서 본다면 세계를 누구의 이익의 견지에서 보는가, 무엇을 기본으로 하여 세계의 변화발전에 대하는가 하는 것은 세계에서 지배적 지위를 차지하고 주동적 역할을 하는 것을 무엇으로 보는가에 달려있습니다.
그것은 둘째로 인간의 운명개척의 방도를 밝힐 수 있게 설정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올바로 규명할 때 인간이 자기운명의 주인이냐, 아니면 외적인 힘에 종속되어 있느냐, 인간이 자기운명을 자신의 힘으로 개척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를 해명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세계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그 철학의 진보성과 반동성도 명백히 규정될 수 있습니다.
나: 앞의 논의와 비슷한 것이지만 이남의 일부 ML 론자들은 세계와 인간의 관계문제에서 그 둘중 어느 것이 일차적인가 하는 정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것은 철학의 근본문제로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주: 그러한 논리를 전개하는 ML 론자들은 “...주체철학의 근본문제인 세계와 사람의 관계문제는 둘중 어느것이 일차적인가 하는 정의가 불가능한 문제이기 때문에 근본문제가 아니다.”(6) 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물질과 의식의 관계는 둘중 어느 것이 일차적인가 하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철학의 근본문제로 되지만 세계와 사람의 관계문제는 둘중 어느것이 일차적인가 하는 정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철학의 근본문제로 정립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히 그릇된 논리이며 맑스-레닌주의 철학이 주장한 명제의 내용의 본의조차 잘 모르고 그것을 유일한 교조로 하여 모든 것을 그에 맞는가 맞지 않는가를 재여보는 지극히 유치한 유아적 사고방식의 귀결입니다.
레닌은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물질과 의식의 범주는 보통의 형식논리적 방법, 즉 그것을 보다 류적인 개념에 포섭시키거나 본질적 징표들을 열거하는 방법으로는 정의할 수 없으며 다만 물질과 의식의 상호관계, 어느 것이 일차적이고 어느 것이 이차적이냐 하는 것을 밝히는 방법으로만 정의할 수 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이것은 물질과 의식이라는 포괄적인 범주에 대한 정의의 특성을 밝힌 것이지 두개의 개념중 어느 것이 일차적이기 때문에 철학의 근본문제로 된다는 것을 근거지은 것은 아닙니다.
나: 그러면 세계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 문제를 철학의 근본문제로 설정한 것이 가장 정당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혀주시지요.
주: 철학의 근본문제에 대한 논의를 올바로 진행할 수 있는 방법론적 시각부터 정립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철학의 근본문제에 대한 분석의 방법론적 시각은 첫째로 철학의 근본문제 개념이 담고있는 본의를 과학적으로 정립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개념의 본의에 대한 이해가 정립되어야 어떤 문제가 철학의 근본문제로 되어야 하는가를 올바로 전개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미 앞에서 논의되었습니다.
둘째로는 철학의 사명에 대한 올바른 규정이 내려져야 합니다. 철학의 사명을 무엇으로 이해하느냐에 따라 근본문제를 규정하는 시각에서 차이가 생기게 됩니다. 이러한 이해상의 차이를 파헤치지 않고 철학의 근본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결국 동문서답식이 되고 말것입니다.
셋째로, 시대적 요구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있어야 합니다. 즉 혁명실천의 요청과 사상사 발전의 시대적 요청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이루어져야 철학의 근본문제 설정의 정당성이 논의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방법론적 시각에서 주체철학의 근본문제 설정의 정당성이 논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2) 세계관의 사명과 철학의 근본문제
나: 그러한 방법론적 시각에서 철학의 근본문제가 논의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그러면 먼저 세계관의 사명의 시각에서 철학의 근본문제를 논의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주: 다른 모든 과학이 그러하듯이 철학의 근본문제도 마땅히 철학과학의 본질과 사명에 맞게 규정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철학의 근본문제가 이론적으로 올바로 전개되고 풀어나가는 과정이 철학의 본질에 맞고 사명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으로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본다면 지난 시기의 철학들에서 철학의 근본문제가 올바로 설정될 수 없었던 중요한 이유의 하나가 철학의 본질과 사명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정립되지 못했던 데도 있다고 봅니다. 간단히 말하여, 수천년의 철학사상사는 철학의 대상과 사명에 대한 과학적인 해명을 보지 못한채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철학의 대상과 사명에 대한 수많은 논의들이 있었지만 요약하면 맑스주의 이전 철학에서는 철학을 “과학의 과학”으로 보는 견해와 철학자체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실증주의적 견해가 있었습니다.
맑스주의는 이러한 견해를 초극하는 데 주되는 주의를 돌리면서 철학을 세계의 존재와 운동발전의 일반적 합법칙성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식화하였습니다. 맑스주의가 ‘존재론’을 철학의 주되는 내용으로 본 철학과 ‘인식론’을 철학의 주되는 내용으로 본 철학의 한계성을 다같이 초극하고 존재론과 인식론을 통일적으로 연구하면서 세계의 존재와 운동발전의 합법칙성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식화한 것은 철학사 발전에서 하나의 거보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시기 그 어느 철학도 인간에 의한 세계의 지배와 개조발전의 합법칙성을 연구하는 것을 철학의 주되는 내용으로 정식화하고 인간의 운명개척의 방도를 밝히는 것을 철학의 사명으로 규정하지 못하였습니다.
김정일 노동당총비서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습니다.
“철학적 세계관의 근본사명은 인간의 운명개척의 길을 밝혀주는 데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인식활동과 실천활동의 근본목적은 인간의 운명을 개척하는 데 있습니다. 철학의 목적과 사명도 여기에서 예외로 될 수는 없습니다.”(7)
철학의 사명은 인간의 운명개척의 길을 명시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세계의 본질이 무엇이며 어떻게 변화발전하는가 하는 것을 알려고 하는 것도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운명개척의 길을 알기위한 데 있습니다.
맑스주의 철학도 부르조아 유물론의 관조적 성격을 비판하면서 실천문제를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천을 “대상적 활동,” “감성적 물질적 활동”으로 보았고 실천문제를 인간의 운명개척의 문제로가 아니라 인식과의 관계에서 ‘지행합일’의 문제로 고찰하였습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맑스주의 철학은 원리적으로는 인식의 철학, 인식의 방법론 문제를 취급한 철학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맑스주의 철학의 주되는 내용과 사명에 대한 이러한 이해가 물질과 의식의 상호관계문제를 철학의 근본문제로 규정케 한 것이라고 보아집니다. 실제로 레닌 자신도 그의 저서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물질과 의식의 상호관계문제를 인식론의 최대의 근본문제(8)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남의 일부 ML 론자들은 이러한 분석을 하지않고 “철학의 근본문제는 물질과 의식의 상호관계 문제이다. 그것은 맑스-레닌주의 고전가들이 그렇게 규정했기 때문이다.” “철학의 근본문제에 대한 주체철학의 근본문제는 잘못된 이해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맑스-레닌주의의 규정과 어긋나기 때문이다."(9)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선행철학에 대한 교조에 머리가 굳어진 '사상가’의 어리석은 흑백논리이며 철학적 희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 이남의 어떤 ML 론자는 물질-의식의 문제에도 세계-인간의 문제가 내포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주장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요.
주: 그것은 자기를 정당화하기 위한 궤변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계-인간의 문제는 결코 인간의 의식과 객관세계와의 관계, 주관과 객관과의 관계, 사회적 존재와 사회적 의식의 관계, 생산력의 구성요소로서의 노동력, 사람들간의 물질적 관계로서의 생산관계 등의 제관계에 해소되거나 그것으로 대치될 수는 결코 없습니다. 맑스-레닌주의 철학은 인간과 세계와의 관계를 옹근 몫으로 취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을 물질과 의식, 사회적 존재와 사회적 의식, 노동력과 생산관계 등의 제요소에 해소시켜 취급하고 있을 뿐입니다.
세계의 본질과 시원, 의식의 원천을 해명하는 인식론상에서는 물질과 의식의 상호관계 문제가 근본문제로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의 존재와 운동발전에서 가장 보편적 관계는 인간과 세계, 인간과 인간 밖의 물질세계와의 관계입니다. 인간-세계의 문제가 현실세계의 존재와 운동발전에서 가장 보편적 관계, 인간의 운명개척을 위한 활동의 보편적 관계라면 물질-의식의 문제는 이 보편적 관계를 밝히기 위한 전제, 인식론적 전제로 됩니다.
그러므로 물질-의식의 문제는 오늘에 와서 더 이상 철학의 근본문제가 아니라 인식론상의 근본문제로서의 자기의 위치를 정확히 자리매김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김정일총비서께서는 세계에서 차지하는 인간의 지위와 역할은 물질세계의 일반적 특징과 인간의 본질적 특성에 대한 철학적 해명에 기초하여서만 밝혀질 수 있는 것만큼 사람중심의 철학적 세계관은 물질세계의 일반적 특징을 밝혀주는 원리와 인간의 본질적 특성을 밝혀주는 원리 그리고 세계에서 차지하는 인간의 지위와 역할을 밝혀주는 원리를 다같이 포괄하게 되며 이런 점에서 주체의 세계관은 지난 시기의 철학적 세계관이 가지고 있던 일면성을 극복하고 세계의 본질과 인간의 운명문제에 가장 심오하고 포괄적인 해명을 준 철학적 세계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10)고 지적하시었습니다.
주체철학은 철학의 본질과 사명에 맞게 철학의 근본문제를 규정함으로써 역사상 처음으로 철학본연의 근본문제를 과학적으로 정식화하는 사상사적 공헌을 하였으며 지난 시기의 철학이 근본문제로 설정했던 물질-의식 문제의 본질과 내용, 그 위상을 정확히 밝히고 세계-인간의 상호관계를 명시하였습니다. 물질-의식의 문제와 인간의 본질적 특성에 대한 과학적 해명을 전제로 하고 자체내에 포섭하는 세계-인간의 문제를 철학의 근본문제로 정립함으로써 주체철학은 지난 시기 모든 철학의 일면성과 한계성을 초극하고 세계의 본질과 인간의 운명문제에 대한 가장 심오한 해명을 주었습니다. 여기에 주체철학의 독창성과 우월성, 그 과학성과 혁명성, 보편성과 현실성의 기초가 있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3) 시대적 요청과 철학의 근본문제
나: 이남의 일부 ML 론자들은 오늘의 시대를 ‘국가독점자본주의 시기,’ ‘제국주의 전반적 시기의 3 단계’ 라고 주장하면서 맑스-레닌주의의 모든 원리와 명제들이 그대로 적용되는 시대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철학의 근본문제>도 이러한 주장에 바탕하여 <물질-의식>의 문제로 보는 것 같습니다.
주: 철학의 근본문제에 대한 분석도 마땅히 우리 시대의 변혁운동 발전의 요청, 사상사 발전의 시대적 요구와의 관계에서 분석되어야 합니다. 어떠한 시대를 막론하고 그 시대의 철학이 있었습니다. 그 시대의 철학은 당대의 인간들의 사고와 행동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습니다.
매 역사적 시대의 철학은 그 시대의 실천적 요구를 반영하며 사상사 발전의 합법칙적 요구에 맞게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철학의 근본문제도 분석되어야 합니다.
나: 그러면 먼저 변혁운동의 시대적 요청과 철학의 근본문제의 상호관계의 견지에서 주체철학의 근본문제의 정당성을 어떻게 전개할 수 있겠는지요.
주: 철학이 없는 시대란 결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철학은 언제나 시대의 근저에 엄연히 존재하며 그 시대의 인간들의 활동을 규정합니다.
현시대는 역사발전과 변혁운동의 실천에서 근본적 전환이 이룩된 역사적 시대입니다. 즉 현시대는 역사의 주체, 변혁운동의 주체인 민중의 지위와 역할에서 근본적 전환이 일어난 시대입니다.
이 시대의 특징은 우선 역사상 처음으로 민중이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한 시대입니다. 민중이 자기운명의 주인으로 되었다는 것은 자기운명의 주인으로서의 자각을 가지고 자주적 권리의 주인으로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역사의 주체인 민중이 역사의 대상으로만 간주되던 시대는 영원히 지나갔으며 우리 시대에 와서 민중의 지위는 근본적으로 달라졌습니다.
우리 시대는 또한 민중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높아지고 역사의 무대에서 주역이 바뀐 시대입니다. 역사의 창조자인 민중이 역사밖에 서있던 시기, 민중이 역사발전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면서도 많은 경우에 지배계급의 의사에 따라 역사를 창조하는 무거운 부담을 걸머지지 않으면 안되었던 시기는 지나갔습니다. 우리 시대는 한마디로 말하여 민중이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역사와 자기 운명을 개척하며 자주성을 실현해 나가는 주체시대, 자주성의 시대입니다. 우리 시대에 일어난 이 시대적 전환은 지구위에 인간이라는 존재가 생겨난 이래 가장 위대하고 근본적인 의의를 가지는 역사적 사변이라 하겠습니다.
나: 그런데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부정하는 이남의 ML 론자들의 주장은 무엇에 기초하고 있는지요.
주: 역사의 변화, 시대평가의 방법론적 시각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역사의 발전, 시대의 발전은 마땅히 역사의 주체인 민중의 지위와 역할을 척도로 하여 분석되고 평가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남의 일부 ML 론자들은 사구체의 변화를 척도로하여 시대를 평가하는 맑스-레닌주의적 관점에 머리가 굳어져 현시대를 총체적으로 <제국주의 시대>로 보면서 시대의 근본적인 변화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남의 한 사상가는 이러한 교조적 견해를 비판하면서 “우리는 이러한 시대를 ‘전반적 위기의 3 단계,’ ‘국가독점자본주의 시대,’ 혹은 ‘제국주의 시대’ 라고 이름짓는 것을 일반성, 보편타당성을 잃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멸해가는 마지막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는 세력을 우리 시대의 대변인으로 내세운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11) 라고 옳게 지적하였습니다.
나: 새로운 시대적 요청과 철학의 근본문제의 정립과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요.
주: 시대의 발전은 세계관의 새로운 발전을 요청합니다. 시대의 발전상황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있는 김정일총비서께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시었습니다.
“시대의 발전은 세계관의 발전을 동반합니다. 노동계급의 진출과 함께 개시된 혁명의 끊임없는 확대 발전은 이제까지 역사의 대상으로 되어온 근로인민대중이 역사의 주인으로 등장하는 새로운 시대의 탄생을 가져왔습니다. 노동계급을 비롯한 근로인민대중이 세계를 지배하는 위대한 역량으로 등장한 새시대는 그들이 자기운명의 주인이 되어 그것을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개척하며 민족해방, 계급해방, 인간해방의 역사적 위업을 승리적으로 실현해 나갈 수 있게하는 새로운 세계관의 출현을 요구하였습니다. 이 역사적 과제는 주체사상이 창시됨으로써 빛나게 해결되었습니다.”(12)
노동자계급이 자본을 반대하는 투쟁에 일떠섰던 시기의 시대적 요청은 자본주의의 영원성을 설교하는 반동적 세계관을 타파하고 자본주의의 멸망의 불가피성과 사회주의의 승리의 필연성을 신념으로 심어줄 수 있는 과학적 세계관을 확립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봉건잔재이면서 부르조아지에 의해 악용되고 있던 신중심의 세계관과 ‘절대이념’을 내세우는 객관적 관념론적 세계관과 고립된 ‘자아’를 내세우는 주관관념론적 세계관을 초극하고 유물론적이며 변증법적인 세계관을 확립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은 물질-의식의 문제에 대한 과학적 해명을 토대로 하여 그 위에서만 정립될 수 있었습니다. 물질-의식 문제의 과학적 해결위에서 역사발전의 주재자는 신도, 절대이념도, 자아도 아니라 생산양식이며 역사는 생산양식의 교체의 역사이고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점유의 사적 자본주의적 성격간의 모순에 의하여 반드시 멸망한다는 것이 명시되었습니다.
맑스-레닌주의는 ‘경제적 결정론’이라는 부르조아 사상가들의 비난을 배격하면서 의식은 객관적 필연성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객관세계를 정확히 반영한 의식은 거기에 능동적으로 반작용한다는 이론을 제시하고 사상이론이 민중에게 파악되면 거대한 물질적 힘으로 변화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물질-의식의 문제를 기본틀로 하여 전개되고 생산양식을 역사의 주재자로 본 맑스-레닌주의는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보는데로 나갈 수 없었으며 인간의 주동적인 활동을 해명할 수 없었습니다. 민중이 자기운명의 주인으로 등장하여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역사와 자기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새 시대의 요청은 세계-인간의 문제에 대한 과학적 해명에 기초해서만 해결될 수 있습니다.
현시대야말로 인간의 운명개척의 참된 진로를 명시해주는 진정한 철학이 요청되는 시대이며 인간의 운명개척의 진로는 세계에서 차지하는 인간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과학적 해명에 의해서만 제시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남의 한 사상가는 “주체시대는 맑스와 레닌이 살던 시대와는 달리 보다 높은 수준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그것은 철학의 근본문제 속에 첨예하게 등장한다....세계-인간의 문제는 물질-의식이라는 문제를 전제하며 물질-의식의 문제에서 완전히 해명되지 않은 것-인간의 주동성 문제를 해명하고 있다. 그리고 세계-인간의 문제는 세계적 차원에서 민중이 주인으로 자각적으로 일떠서는 시대의 혁명승리를 반영한다.”(13) 라고 썼습니다.
나: 이남의 일부 ML 론자들은 시대에 관계없이 물질-의식의 문제가 철학의 영원한 근본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 문제에 대하여 분석해 주시지요.
주: 이남의 일부 ML 론자들은 물질-의식의 문제가 철학의 영원한 근본문제라고 주장하면서 오늘의 시대야 말로 유물론적 관점을 더욱 명백히 해야될 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무리 인류의 역사가 변화하고 발전해도 철학의 근본문제는 영원히 유물론이냐 관념론이냐의 문제일 수밖에 없으며 이는 영구불변이다....그러면 현대 제국주의 시대에서는 유물론이냐 관념론이냐 하는 문제가 무의미한 문제인가? 결코 그렇지는 않다...현대 제국주의자들의 철학은 모두 주관적 관념론에 근거하고 있다. 이는 현재의 시기가 더욱 유물론적 관점을 명백히 해야 하는 시대임을 대변하는 것이라 하겠다.”(14)라고 쓰고 있습니다.
세계-인간의 문제가 철학본연의 근본문제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철학의 본질과 사명의 시각에서 논의되었습니다. 여기서는 현시대야말로 유물론적 관점을 명백히 해야 할 시대라는 주장을 놓고 논의해 보겠습니다. 유물론적 관점을 명백히 하는 것은 과거의 시기에도 중요했으며 미래의 시기에도 중요하고 물론 현재의 시기에도 중요합니다. 특히 현대 제국주의의 철학이 모두 주관관념론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유물론적 관점을 명백히 해야할 시기라는 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물질-의식의 문제를 철학의 근본문제로 해야 한다는 근거로는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현대 제국주의의 철학이 왜, 어떻게 모두 주관적 관념론에 매달리게 되었느냐 하는 것에 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맑스주의 이전의 유물론 철학은 자연현상에 대한 유물론적 해석에 머물고 사회현상에 대한 해석에서는 역시 관념론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맑스-레닌주의 철학에서 유물사관이 확립됨으로써 사회현상에 대한 관념론적 해석이 원리적으로 타파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관념론은 마침내 그 최후의 피난처로부터 축출되었다고 맑스주의 학자들은 지적하였습니다.
물론 제국주의 시기에 들어서면서 부르조아 철학은 인식론의 영역에 매달려 불가지론을 설교하면서 주관관념론을 퍼뜨렸습니다. 레닌은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인식론의 영역에 기생하여 조작된 주관관념론을 원리적으로 비판하여 극복하였습니다. 그러자 제국주의 부르조아 철학은 맑스-레닌주의를 ‘경제적 결정론'이라고 비판하면서 인간의 본질적 속성을 과학적으로 해명하지 못한 맑스-레닌주의의 한계성에 매달려 부르조아 인간철학을 조작하여 주관관념론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현대 제국주의의 주관관념론, 부르조아 인간철학은 바로 사회적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과학적 해명에 기초하여 세계-인간의 문제를 정확히 풀어야만 원리적으로 극복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여, 현대 제국주의의 주관관념론은 세계-인간의 문제에 대한 과학적 해명에 기초해야만 극복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인간의 문제는 물질세계의 일반적 특징을 밝혀주는 원리를 전제로 하고 그것을 자체 속에 포섭하고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주체철학의 본질은 유물론으로부터의 일탈”((15)이라는 이남의 ML 론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유아적 사고방식에 기초하고 있는 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세계-인간의 문제가 철학본연의 근본문제라는 것이 해명된 것은 오늘의 혁명실천이 그것을 요청하였을 뿐 아니라 철학사상사와 인식사의 발전의 합법칙적 요청이었으며 그것의 총결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질-의식 문제의 과학적 해명노정, 인간의 본질적 속성에 대한 과학적 해명의 철학 사상사와 인식사의 분석도 없이 물질-의식의 문제가 영원한 철학의 근본문제라고 주장하는 것은 철학적 무지의 산물일 뿐입니다.
나: 그런데 물질-의식의 문제를 철학의 영원한 근본문제라고 주장하는 일부 ML 론자들은 철학의 “중심이동설”을 들고 나와 세계-인간의 문제는 현시대의 철학의 “중심적인 문제”이지 “근본문제”는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주: 이남의 일부 ML 론자들은 “철학의 근본문제는 영원히 변할 수 없으나 철학의 시대적 중심과제는 변할 수밖에 없다...인간중심의 철학문제를 철학의 근본문제로는 볼 수 없다.”(16)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세계관의 본질과 사명이 인간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한 것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ML 론자들도 반론이 없을 것으로 봅니다. 그들도 세계를 인식하기 위한 활동, 세계를 개조변혁하기 위한 활동이 전부 목적이 없는 운동의 활동이라고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철학이 인간의 운명문제에 해답을 주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면 마땅히 <세계-인간>의 문제를 해명해야 하며 세계-인간의 문제를 해명하려면 <세계의 본질>과 그 <운동발전의 합법칙성>이 무엇이냐, 인간의 <본질적 특성>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의 과학적 해명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 후에야 세계에서 차지하는 인간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과학적 해명을 이룩할 수 있고 운명개척의 과학적 방도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인류 사상사의 첫 시기에 인간의 운명개척의 방도를 해명하기 위하여 부닥친 문제는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가 어떠한 세계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이 문제의 해명을 위하여 맑스주의에 이르기까지 2천여년의 장구한 사상사가 엮어져 내려왔습니다. 맑스주의에 와서야 <세계의 본질>과 그 <발전의 일반적 합법칙성>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확립되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맑스주의 이전의 철학들에서 세계-인간의 문제를 풀기 위한 첫째의 전제에 대한 논의만으로 그쳤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세계의 본질에 대한 이러저러한 해석에 기초하여 인간의 본성도 나름대로 규정짓고 세계-인간의 문제에 대한 판단도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물질-의식의 문제에 종속시켜 해석하였습니다.
맑스주의 철학에 의하여 물질-의식의 문제에 대한 과학적 해명이 주어진 조건에서 둘째의 전제인 인간의 본질적 특성에 대한 과학적 해명의 과제가 전면에 제기되었습니다. 맑스주의 철학은 유물사관에 기초하여 인간이 사회의 물질적 존재라는 것을 해명함으로써 인간의 본질에 대한 해명의 과학적 토대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러나 맑스주의 철학은 인간존재의 물질적 본질과 사회적 특성을 밝히는데 머무르고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본질적 속성을 밝히는 데까지 승화되지 못하였습니다.
세계의 물질적 본성이 과학적으로 해명된 조건에서 인간의 본성이 과학적으로 해명되어야 세계-인간의 문제도 과학적으로 밝혀질 수 있습니다. 주체철학에 의하여 유일한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본질적 속성이 과학적으로 해명됨으로써 비로소 세계-인간의 문제에 대한 전면적인 과학적 해명이주어지게 되었습니다.
철학사상사의 이러한 분석에 대하여 이남의 일부 ML 론자들은 “...전체 철학사가 주사로 나아가는 과정이었고 -’민족과 철학’(17)을 보라- 이는 곧 철학사 모든 기간에 철학의 근본문제가 세계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의 문제로 되어버리는 것이다.”18) 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제 불가피하게 인정해야 할 사실입니다. 사실이 그런 것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철학사상사와 인식사의 총결은 세계-인간의 문제가 철학본연의 근본문제이며 이 문제를 해명하는 데서 역사발전의 일정단계에서 철학의 중심적인 문제들이 있었다는 것을 말하여 줍니다. ‘철학의 중심 이동’에 대하여 말한다면 결국 고대로부터 맑스주의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철학의 ‘근본문제’로 삼았던 물질-의식의 문제는 철학본연의 근본문제인 세계-인간의 문제를 해명하기 위한 중심문제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물질-의식의 문제를 해명하는 데서도 처음에는 시원물질에 관한 문제, 다음에는 세계의 물질적 본성에 관한 문제로 초점이 이동되었습니다.
결국 ML 론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철학의 영원한 근본문제는 세계-인간의 문제이며 물질-의식의 문제는 세계-인간의 문제를 해명하기 위한 전제로서 일정한 역사적 기간에 철학의 중심문제로 되어 왔으며 오늘날 그것은 인식론의 근본문제로서의 위치가 정확히 자리매김되어 세계-인간의 문제의 해명에 종속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
(1) "북한사상," 태백, 20-21 페이지
(2) "남한의 주체사상 논쟁," 밝은 글, 265 페이지
(3) 위와 같은 책, 207-278 페이지 참조
(4) "주체철학 비판 1," 58 페이지
(5) 김정일, "주체사상에 대하여," 74 페이지
(6) “주체철학 비판 1," 45 페이지
(7) 김정일, "주체사상고양에서 제기되는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 4 페이지
(8) 레닌,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1963 년, 171-172 페이지 참조
(9) "진리," 58 페이지와 "혁명의 철학," 30 페이지 참조
(10) 김정일, "주체사상교양에서 제기되는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 6 페이지
(11) "남한의 주체사상 논쟁," 밝은글, 34 페이지
(12) 김정일, "주체사상에 대하여,” 73-74 페이지
(13) "한국사회변혁과 철학논쟁," 사계절, 344페이지
(14) "남한의 주제사상 논쟁," 156 페이지
(15) "혁명의 철학," 전진, 3 페이지
(16) 위와 같은 책, 401 페이지
(17) "민족과 철학," 대동, 1989
(18) "남한의 주체사상 논쟁," 268 페이지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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