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의 대동강은 노래한다
유서깊고 자랑도 많은 아름다운 평양에는 푸른 비단을 필필이 늘여놓은 듯 도시를 가로지르며 유유히 흐르는 어머니강 대동강이 있다.
예로부터 대동강류역은 세계5대문화의 하나인 대동강문화가 창조된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의 중류와 하류류역은 맑은 강줄기와 넓고 비옥한 평야가 있고 물산이 풍부하며 기온이 따뜻한 것으로 하여 사람들이 살기 좋은 곳으로 되여왔다.
하기에 평양은 민족의 원시조 단군이 세운 고조선의 수도였고 천년강국 고구려의 수도였다. 이렇듯 평양의 력사가 깊어 수천년, 바로 그 기나긴 세월속에는 언제나 맑고맑은 대동강의 용용한 흐름이 있었으니 언제부터였던가. 가는 세월과 함께 무심히 흐르던 이 강이 근로하는 인 민을 위하여, 그들의 웃음과 랑만, 사랑과 행복을 더해주며 은구슬, 옥구슬이 되여 흐르기 시작한 그날은…
인민의 행복 싣고 흐르는 대동강
평양의 대동강반에는 공화국의 인민들속에 친숙해진 《옥류》라고 불리우는 건축물들이 많다. 옥류교, 옥류관, 옥류약수상점, 옥류아동병원… 원래 《옥류》라는 이름은 예로부터 릉라도앞 청류벽을 감돌아 흐르는 대동강물결이 구슬같다고 하여 불리워진 이름이다.
그러나 흐르는 세월과 함께 사라져가던 《옥류》라는 그 이름을 찾아주시고 대동강을 명실공히 인민의 기쁨과 웃음이 구슬이 되여 흐르는 락원의 강으로 전변시켜주신 분은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이시였다.
그 나날 얼마나 하많은 인민사랑의 전설들이 태여났던가. 주체47(1958)년 3월 어느날이였다.건설부문의 한 일군 을 몸가까이 부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더 미룰수 없는 문제가 있어서 불렀다고 하시면서 평양시건설계획에 제2대동교(당시)를 언제부터 건설하기로 되여있는가고 물으시였다.
그 다리건설은 1961년부터 시작하기로 계획되여있다는 일군의 보고를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못내 가슴이 아프신듯 우수경칩에 대동강의 얼음은 풀리고있는데 인민들의 소원은 풀리지 못하고있다고 조용히 뇌이시였다.
잠시 동안을 두시였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침에 동평양에 나가보신데 대하여 이야기하시면서 대동강 웃쪽사람들이 불편하게 에돌아 출근하고있었다고, 아무래도 우리가 힘겨웁지만 제2대동교건설을 앞당겨야 하겠다고 교시하시였다.
계속하시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제2대동교건설을 5개년계획이 끝난 다음에 시작할 것이 아니라 5개년계획 기간안에 끝내자고, 그래서 인민들의 소원을 빨리 풀어주자고 하시며 혁명도 건설도 인민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교시하시였다.
그로부터 얼마후 이른새벽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과 함께 배를 타시고 대동강을 돌아보시였다. 어느덧 배는 오늘의 옥류교 위치에 이르렀다.
엷은 새벽안개의 장막이 걷히면서 수려한 자태를 드러내는 모란봉과 릉라도를 이윽히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안의 량쪽을 가리키시면서 여기가 어떤가고, 훌륭한 새 다리를 여기에다 놓자고, 여기가 제일 좋은 자리같다고 하시였다.
일군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래로는 련광정과 대동문이 있고 우로는 모란봉과 릉라도의 아름다운 자태가 한눈에 바라보이는데 강반의 경치 또한 이를데없이 좋은 곳이였다. 이리하여 옥류교는 5개년계획기간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잡아주신 명당자리에 건설되게 되였다.
그때로부터 2년후인 주체49(1960)년 5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완공단계에 이른 제2대동교건설장을 찾으시였다.
그날 전국의 인민들로부터 위대한 수령님의 배려에 의하여 천리마시대에 새로 건설하는 현대적인 다리를 어떻게 이전시기에 건설한 《대동교》에 비겨 《제2대동교》라고 하겠는가고 하면서 다리이름을 새로 짓자는 의견이 제기되였다는 보고를 들으신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저 릉라도 여울물이 구슬같이 반짝이면서 흐른다고 하여 옥류라고 하고 그래서 그 옥류와 부딪치는 저 병풍같은 돌벽을 옥류병이라고 불렀다고 하시면서 예로부터 인민들이 즐겨 부르는 옥류라는 이름을 따서 《옥류교》라고 하는것이 어떤가고 하시였다.
《옥류교》!
진정 대동강의 아름다움과 공화국인민의 민족적정서를 다 비껴담은 멋있는 이름이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체 인민의 한결같은 념원을 담아 현지지도의 길에서 다리 이름도 친히 자신의 친필로 써주시였다.
대동강을 인민의 강으로 전변시켜주시려 바치신 위대한 수령님의 끝없는 사랑과 헌신은 비단 옥류교에만 깃들어있는것이 아니다. 대동강반의 명당자리에 한 폭의 그림마냥 솟아오른 조선식의 특색있는 기와집인 옥류관과 대극장의 터전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아직은 평양시민들이 잠자리에서 깨여나지 못했던 이른새벽 몸소 배를 타시고 대동강을 오르내리시면서 한날한시에 잡아주신것이다.
옥류관 준공식의 그날 몸소 현지에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옥류관의 로대에서 해빛을 받아 금구슬, 은구슬로 반짝이며 흐르는 대동강을 바라보시며 이 집은 터가 아주 좋다고, 참으로 명당이라고 하시며 그에 어울리는 《옥류관》이라는 이름도 친히 지어주시였다. 지난 시기 큰물피해도 많았던 대동강을 그 어떤 자연피해도 모르는 락원의 강으로 전변시켜주시려 호안공사도 진행하도록 하시고 대동강류역에 서해갑문을 비롯한 여러 갑문들도 건설하도 록 하신 우리 수령님.
위대한 수령님의 이민위천의 뜻을 그대로 이어가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대동강반에 인민의 웃음소리, 행복의 노래소리 더 높이 울려퍼지게 하시려 온갖 로고와 심혈을 다 바치시였다.
평양에 시민들의 종합적인 문화생활기지인 창광원을 건설할 때였다. 당시 창광원에서 소용되는 물량은 대단한것이였다. 수영장과 목욕탕만 한번 채우려고 해도 수천t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그 물을 계속 맑은물로 보장한다는것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였다.
이러한 실태를 료해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느날 그 바쁘신 가운데서도 친히 일군들을 부르시여 동무들이 생각하고있는 안이 있으면 먼저 들어보자고 하시였다. 한 일군이 한동안 주저하다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다른 나라에서 흔히 하고있는 방법대로 한번 채워넣은 물을 다시 려과하여 쓰는 방법밖에 없을것같다고 솔직히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아무 말씀없이 한동안 생각에 잠기시였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다른 나라에서야 어떻게 하든 우리는 우리 인민들에게 최상의 조건을 마련하여주는 원칙에서 물문제도 해결해야 한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인민들이 리용할 목욕탕과 수영장, 물놀이장에는 1%의 묵은 물도 있어서는 안된다고, 100% 뽑고 100% 넣는 원칙에서 그 방도를 찾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평양시지도를 펼쳐놓으시고 붉은색연필로 목욕탕과 대동강을 쭉 련결시키시며 대동강물을 끌어올리자고, 사람이 원하는대로 물을 흐르게 하는것이 바로 우리 로동당시대가 아닌가고 교시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창광원의 수원은 억년 마를줄 모르는 대동강의 흐름과 하나로 련결되게 되였다.이뿐이 아니다. 이름난 평양랭면과 함께 온 나라에 소문난 옥류관을 인민들의 수요에 맞게 새로 증축하도록 하여주시고 릉라도를 세상에 둘도 없는 인민의 문화휴식터로 전변시키기 위해 크나큰 심혈을 기울이신분도, 옥류교와 가까운 곳에서 약수가 발견되였다는 보고를 받으시였을 때에는 참 좋은 일이라고 하시면서 대동강의 아름다운 이름을 달아 몸소 《옥류약수》라고 그 이름을 지어주신분도, 위대한 생의 마지막시기에는 창전거리건설을 몸소 발기하시고 거리가 대동강반에 솟아오른 또 하나의 인민의 보금자리로 건설되도록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신분도 바로 우리 장군님이시였다.
아마도 사람들은 다는 모를 것이다. 새로 일떠서는 주체사상탑을 배경으로 대동강 한복판에 큰 분수를 설치할데 대한 발기를 하시고도 이제 건설될 대형분수가 대동강의 주변환경과 사람들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여 해당 부문에 대동강물의 수질상태를 구체적으로 연구분석할데 대한 과업을 주신 다심한 그 은정, 달을 넘기고 해를 넘기는 여러 차례의 과학적인 실험과 치밀한 연구분석끝에 대동강물의 수질이 매우 깨끗하며 분수를 쏴올리면 주위의 공기를 더 맑고 신선하게 해준다는것, 그런것으로 하여 사람들의 기분도 상쾌하게 할뿐 아니라 건강에도 매우 좋을것이라는 과학적인 자료를 받으신 다음에야 대동강의 대형분수건설공사를 즉시 시작하라는 지시를 내리신 가슴뜨거운 인민사랑의 이야기를. 오늘 대동강은 인민을 위해 불면불휴의 헌신으로 날과 달을 이어오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숭고한 뜻을 꽃피우시려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의 크나 큰 사랑과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영원한 인민의 옥류가 되여 절세위인들의 그 사랑, 그 은덕을 노래하며 굽이쳐 흐르고있다.
지금도 대동강 푸른 물결우에 두둥실 떠있는 종합봉사선 《무지개》호에 오르면 새로 건조된 배를 돌아보시며 우리 인민들이 최상의 문명을 최고의 수준에서 누리게 하려는 당의 의도가 완벽하게 실현된 현대적인 봉사시설이 또 하나 생겼다고, 대동강과 정말 잘 어울린다고 하시며 기쁨을 금치 못하시던 경애하는 원수님의 그날의 말씀이 금시 귀전에 들려오는듯싶다. 그리고 풍치수려한 대동강기슭에 또 하나의 훌륭한 인민봉사기지로 일떠선 평양대동강수산물식당에 들어서면 몸소 현지에 나오시여 식당이름도 《평양대동강수산물식당》이라고 명명해주시고 대동강의 풍치가 한눈에 안겨온다고, 평양대동강수산물식당의 위치가정말 명당자리라고 하시며 오늘 자신의 소원이 또 하나 풀리였다고 환하게 웃으시던 경애하는 그이의 자애로운 영상이 안겨오는듯싶다.
바로 이런 위대한 사랑에 떠받들려 지난 10년어간에만도 대동강반에는 릉라곱등어관, 릉라물놀이장, 릉라유희장, 문수물놀이장, 류경원, 인민야외빙상장, 로라스케트장, 미래과학자거리를 비롯한 인민을 위한 문화정서기지들과 봉사기지들, 현대적인 새 거리가 일떠서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바라시던대로 대동강과 그 주변이 통채로 인민의 유원지, 행복의 락원으로 전변되게 되였다.과연 평양이 생겨 어느때, 어느 시기에 대동강이 이렇듯 인민을 위한 기쁨과 행복의 구슬이 되여 숭고한 인민사랑의 력사를 싣고 줄기차게 흐른적 있었던가.
그것은 천하의 절승경개도 인민에게 복무하지 않는다면 필요없고 그 어떤 억만금도 인민을 위해서라면 아까울것이 없다는 인민사랑을 지니시고 조국도 산천도 인민에게 복무하는 인민의 락원으로 일떠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한생의 로고와 헌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끝없는 위민헌신의 세계가 낳은 빛나는 결과이다.
인민의 존엄 비낀 대동강
예로부터 강이 있고 산이 있는 곳은 사람들이 살기 좋은 명당자리로 일러왔다. 대동강은 그옆에 나지막한 봉우리들을 병풍처럼 펼친 모란봉이 솟아있어 그 경치가 더욱 뛰여나다. 아름다운 봉우리와 푸른 물결 굽이치는 큰강이 나란히 펼쳐져있는것은 평양의 자랑이 아닐수 없다.
옛날 어떤 선비가 모란봉에 걸터앉아 대동강에 대한 시를 읊었다고 한다. 그때 지나가던 모란봉총각이 《아니 선비님, 모란봉에 앉았으면 모란봉에 대한 시를 짓지 왜 대동강만 그립다 노래하는거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선비는 《모르는 소리, 이 모란봉은 처녀요, 대동강은 총각이라 사랑을 고백하는 처녀가 총각을 노래하는건 응당하렷다.》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대동강을 말할 때 떼여놓을수 없는 모란봉에 올라가보면 아직도 남아있는 고구려시기의 성곽유적들을 많이 볼수 있다.
아찔한 청류벽우로 길게 늘어선 성벽, 제일 높은 봉우리들에 솟아 외적을 감시하고 군사들을 지휘하는 장대로 쓰이였던 최승대, 을밀대, 군사들이 드나들며 적을 족치던 칠성문, 현무문…대동강옆에 우뚝 솟아있는 자랑많은 력사유적 대동문도 수도방위를 위해 세운 고구려시기의 성문이였다.
이 력사유적들에는 외적의 침입으로 곡절과 수난이 많던 민족의 력사, 대동강반의 력사가 깃들어있다. 지난 임진조국전쟁시기에도 우리 나라에 침입한 섬나라의 강도배들은 대동강을 건너와 평양성을 점령하고 로략질을 일삼으면서 무고한 인민들을 죽이고 부녀자들을 겁탈하였다.
국력이 약했던 지난날에는 천연의 자연방패인 대동강도, 모란봉에 높이 쌓은 성벽들도 우리 겨레의 운명을 지켜줄수 없었다. 국력이 약하면 침략의 군화발에 강토를 무참히 짓밟히게 되고 민족의 운명도 도탄에 빠지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백수십년전인 1866년에 미국침략선 《셔먼》호는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의 한복판에까지 기여들어와 재물을 략탈하고 부녀자들을 릉욕하며 조선봉건정부를 함포로 위협하여 예속적인 불평등조약을 강요해보려고 하였다.
당시 침략자들은 자기들을 평양성에 들여놓으며 쌀 1,000섬과 많은 량의 금, 은, 인삼 등을 내놓으라고 오만하게 행동하였다. 이 강도적인 요구가 거부당하자 침략자들은 로골적인 략탈과 살인만행을 감행하였다. 침략자들의 오만무례한 행위에 격분한 평양사람들과 군사들이 떨쳐나 화공전으로 《셔먼》호를 불태워 침몰시키였으나 강도적인 미국은 여기에서 응당한 교훈을 찾을 대신 1868년에는 침략선 《쉐난도아》호를 우리 나라에 침입시켜 대동강하구를 중심으로 한 평안도, 황해도(당시) 접경지역의 연해를 오르내리면서 측량과 정탐행위를 하고 총포사격도 하면서 오만하게 날뛰였다.
그로부터 수십년후 국력이 약한 탓에 나라를 송두리채 빼앗기게 되여 평양의 젖줄기인 대동강도 수난을 당하게 되였다. 나라없던 수난의 그 세월에 대동강물은 쉬임없이 흘렀으나 그에 실려 떠내려간것은 겨레의 비애의 눈물, 처절한 곡성뿐이였다.
그러나 대동강반에 어리였던 우리 겨레의 수난의 운명은 이제는 먼 옛일로 되였다. 모란봉의 옛 성벽들과 성터들도 순수 평양의 력사를 전하는 유적으로만 남아있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자위의 힘을 억척으로 다져주시여 외세의 침략선은 대동강으로 거슬러들어오기는 고사하고 주변바다에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되었다. 오늘 공화국의 힘은 그때 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 적대세력들도 우리 공화국의 자위의 억제력을 보고 두려움에 떤다.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는 대동강물 굽이쳐 출렁이는 김일성광장에서 성대히 거행된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100돐을 경축하는 열병식장에서 예나 지금이나 나라의 지정학적위치는 변함이 없지만 렬강들의 각축전마당으로 무참히 짓밟히던 어제날의 약소국이 오늘은 당당한 정치군사강국으로 전변되였으며 우리 인민은 그 누구도 감히 건드릴수 없는 자주적인민으로 존엄떨치고있다는 뜻깊은 연설을 하시였다.
절세위인들의 뜨거운 인민사랑에 의해 더욱 억척으로 다져진 최강의 군력이 존엄높은 공화국인민의 삶을 지켜주고있기에 오늘 대동강은 영원히 침략의 발길이 닿을수 없는 존엄의 강, 평화의 강, 락원의 강으로 되였으며 인민은 그 어떤 전쟁불안과 위구도 모르고 기쁨과 랑만의 웃음만을 아름다운 대동강물결우에 실어가는 행복한 인민으로 누리에 그 존엄 더욱 빛나게 되였다.
* *
오늘도 평양의 중심부인 김일성광장에 서서 대동강쪽을 바라보면 창공에 높이도 솟은 주체사상탑이 한눈에 안겨온다. 낮에도 빛나고 밤에도 봉화가 타오르는 주체사상탑, 그 탑은 인류사상사의 최고보물고인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의 위대성과 비상한 견인력을 세계만방에 과시하는 탑이다.
탑의 높이는 한눈에 안겨오지만 그 빛발은 위도와 경도를 넘어 전 세계를 환히 비쳐주고있다. 그 웅장한 자태를 비껴싣고 오늘도 출렁이며 흐르는 대동강, 그 물결우에는 비로소 인간이 자기를 알게 하고 인민이 자기 운명개척의 힘있는 주인이 되게 해준 위대한 주체사상의 빛발이 실려있다.
주체사상이 구현되고 현실로 꽃피여 공화국은 존엄높은 인민의 나라로 빛을 뿌리고 대동강은 인민의 존엄과 행복을 담아싣고 줄기차게 흐르고있다. 강 한가운데서도 인민의 행복이 꽃피고 드넓은 강기슭의 그 어디서나 사계절 인민의 웃음소리 들려오는 대동강. 인류의 미래를 밝히는 주체사상탑이 높이 솟아 빛나고 강의 량안에는 인민의 존엄과 행복의 웃음소리가 가득 넘쳐나는 대동강반이야말로 정녕 인민대중제일주의의 사상인 주체사상의 진리성과 정당성, 그 위대한 생활력을 보여주는 대로천박물관이라 해야 할것이다.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신 절세위인들을 대를 이어 높이 모시여 대동강은 앞으로도 영원의 인민의 강, 행복의 강으로 빛을 뿌리며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끝없이 물결쳐갈 것이다.
대동강반
대동강반의 《무지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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