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동지들! 이 총을 받아주!
김좌혁
북관땅은 계절이 일러서 한가위도 지난지 열흘인데 벌써 눈꽃이 흩날렸다. 두만강연안에도 아침부터 흐린 날씨에 맵짠 바람이 불어쳤다. 그리고 이날은 《만주사변기념일》을 하루 앞둔 날이여서 일제놈들이 《국경경비진을 철통같이 강화》하고있었다.
이러한 때 1933년 9월 17일에 훈춘쪽에서 떠난 나루배 한척이 두만강을 건너 조선으로 오고있었다.
배에는 열두서너명의 손님들이 타고있었으며 거의다 겹옷을 입고도 스산한 얼굴들이였다. 그러나 그중에 세 젊은이만은 홑옷을 입고도 추운 날씨에는 아랑곳없이 강건너쪽만 유심히 살피고있었다.
이 세명의 젊은이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시는 항일유격대원으로서 훈춘 성구에서 나와 함께 공작중이던 오일파, 박세홍, 한태연동무들이였다. 이들은 무기를 탈취하기 위하여 룡당파출소를 습격하러가는 길이였다.
이들 세 동무외에 또 네 동무가 있었는데 그들은 강이쪽(훈춘쪽)기슭에 숨어있다가 만일의 경우에 세 동무를 엄호할 임무를 맡고있었다.
배는 잠시후에 두만강을 건너서 룡당나루에 이르렀다. 나루가에는 순사 두놈과 세관 관리 한놈이 기다리고있다가 저마다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의 증명서를 따져보고 몸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놈들은 두만강을 건너다니는 인민들이 소금 한줌, 성냥 한갑도 마음대로 가지고다니지 못하게 하였으며 만일 이런것들이 발견되는 날에는 그것을 무작정 빼앗고 《벌금》까지 받아먹었다. 뿐만아니라 놈들은 조선사람들이 제 나라, 제 땅을 찾아가는데도 어째서 오느냐고 꽥꽥거리며 따귀를 때리고 구두발로 정갱이를 걷어차기가 일쑤였다. 이날도 놈들의 이러한 일거일동을 눈앞에 보게된 세 동무의 가슴은 격분으로 끓었다. 옷자락밑에 감춰가지고 간 권총을 손에 쥐는 동무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배에 타고있는 인민들이 전부 내리고 자기들의 차례가 오기를 인내성있게 기다렸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그곳에 나타난 순사놈과 세관관리놈을 쓸어엎고 무기를 빼앗게 될 싸움에서 애매한 인민들까지 곁불을 받을 념려가 있었기때문이다. 그들은 선객들의 뒤에 서서 천천히 걸어나가며 침착하게 기회를 엿보았다.
맵짠 강바람은 계속 기슭을 휩쓸고 마침내 음산한 하늘에서 눈까지 떨어지기 시작하니 배에서 내린 손님들은 순사놈들에게서 벗어나기가 무섭게 모두들 바쁜 걸음으로 가버리군 하였다. 다른 손님들과 얼마쯤 거리를 두고 천천히 걸어가던 세 동무가 각기 순사들앞에 다가섰을 때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은 전부 가버린 뒤였다. 책임자인 오일파동무의 신호에 의하여 각기 순사 두놈과 세관놈을 쏴눕히고 파출소에 뛰여들어가 무기를 로획한다음 급히 배에 올랐다. 그런데 그들은 뜻밖의 난관에 부닥쳤다. 그것은 배우에 있던 노가 없어졌기때문이다. 그래서 노를 찾느라고 시간을 보내는 사이에 부근에 있던 《국경수비대》와 경찰대들이 추격해오기 시작했다.
가까운 지점에서 적들의 총소리가 나기 시작했을 때에 그들은 강물을 헤여건늘 생각도 해보았으나 그중 한태연동무는 전혀 헤염을 치지 못하였을뿐만아니라 다른 동무들도 로획한 무기를 가지고는 두만강을 건늘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위급한 찰나에도 그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무기를 배에 실은 다음 헤염을 잘 치는 두 동무(오일파동무와 박세홍동무)는 물에 들어서서 배를 밀고 한태연동무만 배에서 적들을 감시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그들이 강 절반쯤 왔을 때에 적들은 벌써 강가에 나타나서 총질을 하였다.
바람이 불고 눈이 내려서 적들은 처음에 세 동무가 타고건너가는 위치를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얼마를 못가서 적들은 우리의 배를 발견했고 그놈들도 배를 타고 뒤따라오기 시작했다.
적들의 총탄은 점점 더 배주위로 집중되였다. 이때부터 세 동무는 배를 내버리고 강물에 들어섰다. 로획한 무기는 오일파동무가 메고 헤염을 칠줄 모르는 한태연동무는 박세홍동무가 업고 건느게 되였다.
적들은 세 동무가 물속으로 건느는것을 보지못하고 떠내려가는 배만 보고 그쪽을 향해 총을 쏘고있었다.
이틈에 세동무는 적들의 탄막에서 요행 벗어났고 그중 오일파동무는 무기를 메고 이미 강을 건너갈수 있었다.
강가에 대기하고있던 네 동무에게 로획한 무기를 넘겨주었다. 그리고 계속 적들을 방어하였다.
이때 한태연동무를 업은 박세홍동무가 강 이쪽(훈춘쪽)언덕에 거의 다달았을 때에 불행히도 적탄을 맞고 물속에 가라앉게 되였다.
그들을 따라내려가며 적을 방어하던 오일파동무마저 적탄에 맞았다. 그러나 그는 자기 상처를 돌볼사이없이 다시 총을 잡고 급히 일어나며 적들을 향해 불을 뿜었고 물속에 빠진 동지들을 구원하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기여내려왔다.
잠시후에 물속에서 다시 머리를 추켜든 박세홍동무는 자기의 부상은 돌아볼사이도 없이 등에 업었던 한태연동무부터 찾았다. 헤염을 치지 못하고 물살에 휩쓸려떠내려가는 그의 머리가 두서너발 아래쪽에서 솟구쳤다가 또다시 물속에 파묻히는것이 보였다. 박세홍동무는 힘을 다하여 그를 따라잡았다. 그리고 한태연동무를 업는데 성공하였다. 그는 가쁜 숨을 내쉬며 다시 돌아서서 강언덕쪽을 향해 헤염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는 가까스로 머리를 들고 앞을 건너다보았다. 이미 먼저 건너간 오일파동무와 그곳에서 대기하고있던 네명의 동지들이 로획한 무기를 손에 잡고 적들을 향해 맹렬한 불을 뿜고있는것이 보였다.
이 순간 박세홍동무에게는 새로운 힘이 솟았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또 새로운 무기가 생겼다.)
그는 한시라도 더 빨리 건너가고싶었다.
그리하여 새로 로획한 무기, 지금 그가 가지고있는 단 한자루의 권총이 아니라 여러자루의 장총(보병총)을 잡고 그전보다 더 대담하게 적을 짓부시는 대렬에 다시 서고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더 힘있게 팔다리를 내저었다.
이때 강가에서는 적들과 싸우는 동지들의 애타는 목소리가 들렸다.
《박동무! 여기야 여기!…》
《어! 박동무! …한동무!》
이러한 동지들의 안타까운 부름소리와 적아간의 격렬한 총소리가 한시에 그의 심장을 두드렸다.
그럴수록 더욱더 그는 급히 강물을 헤여나서 적들에게 한방의 총이라도 더 쏘고싶었다.
그러나 이미 그의 몸에서는 출혈이 심하고 시시로 기운이 진해갔다. 게다가 어느사이엔가 물살이 센 강심으로 차차 휩쓸려들고있었다. 안타깝게 팔을 젓고 다리를 걷어찼으나 헤염을 칠줄 모르는 한태연동무를 등에 업은 그의 몸은 점점 강물을 따라 떠내려갈뿐 위기에서 벗어날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점점 더 위기로 끌려들어가고있었다.
《박동무! …나를 놓아두게… 그리고 동무는 어서 … 적…적이 오네.》
등에 업힌 한동무는 소리쳤다. 그러면서 두손으로 박동무의 등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적들의 총성은 더욱더 긴박해오고 물살은 더욱더 그들을 휩쓸어당기는 위험한 순간이였다.
이제는 숨이 차서 박동무는 입에 물고있는 권총마저 물속에 떨어뜨릴 지경이였다.
그는 입에 문 권총을 가까스로 바른손에 옮겨쥐였다.
그리고 두세번 거듭 급한 숨을 쉬면서 그는 등에 업힌 한동무에게 말하였다.
《참게… 동무는 헤염을 못치니까… 나를… 나를 놓치면 죽네!… 꼭 붙들게! 살아야 해!》
그러나 이미 손발에는 맥이 빠지고 몸은 물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흐리여가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물이 들어찬 목구멍에서는 한마디 말도 더 나오지 못했다.
그는 겨우 정신을 차려가며 또다시 강바닥을 발끝으로 찼다.
그리고 그는 팔을 내젓고 몸을 뒤흔들며 다시 가라앉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동무와 … 그리고 이 총을…》
그러나 손발은 각일각으로 굳어지고 적들은 금시 덜미를 치듯 배를 저어 건너오고있었다.
이때 강언덕에서 부상을 당한 오일파동무가 벼랑끝으로 계속 기여오며 그들을 향해 소리를 쳤다.
박동무는 숨가쁘게 웨치는 오일파동무의 목소리를 들었고 무엇인지 자기 어깨에 닿는것을 느꼈다. 그것은 오일파동무가 강언덕에 엎드려서 내미는 총탁이였다.
《박동무! 어서 이걸 붙잡게!…》
그러나 강턱이 급한 곳이여서 두사람이 한데 매달릴수는 없었다. 박동무는 그 총탁을 등에 업힌 한동무에게 먼저 넘겨주었다. 그리고 물우에 몸을 솟구며 그의 몸을 떠올렸다.
이때 거듭 날아오는 적탄이 박동무의 등을 꿰뚫었다. 이것을 본 오일파동무가 다급한 소리를 지르며 그옆에 있는 다른 동지를 불렀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다른 네 동무는 강가에 다달은 배를 향해 맹렬한 불을 뿜고있었으므로 그의 목소리를 들을수 없었다.
물속으로 가라앉았던 박동무는 겨우 손을 내밀어 권총을 던졌다. 그리고 《혁명동지들! 이 총을 받아주!》하는 마지막부탁을 남기고는 물속에 파묻혀버렸다.
오일파동무는 가까스로 한동무를 언덕에 끌어올려놓고는 계속 강굽이쪽을 기여내려가며 박동무를 불렀다. 그러나 적아간의 자지러지는 총소리뿐 그의 부름에 대답하는 사람도 없고 박동무의 모습도 다시는 물우에 떠오르지 않았다.
오일파동무는 사랑하는 전우의 이름을 부르며 계속 힘자라는데까지 강기슭을 기여내려갔다.
《박동무!…》
《박세홍동무!…》
그때로부터 나는 수많은 전우들을 일제와의 싸움에서 잃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슬픈 마음으로만 생각지 않는다.
바로 그들이 바라고 원하던 그대로 우리 조국은 광복되였고 공화국북반부에는 이미 사회주의락원이 이루어지고있다. 우리의 선두에는 그때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조선인민을 항상 승리에로 인도하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서계신다.
우리 인민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가르치심을 높이 받들고 조선혁명을 끝까지 완수하여야 할 것이다.
14. 대오를 찾아서
리두찬
1940년 겨울 우리들은 녕안현 남호두동쪽 송을령산속에서 겨울을 나기 위하여 밀영을 지었다.
당시 우리 부대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소할바령회의에서 제시하신 전략적방침에 따라 각각 소부대로 활동하고있었다.
그 시기는 적들의 《토벌》이 대단히 심한 때였다.
놈들은 수십만의 병력을 동원하여 우리 부대들을 《압살》하려고 미쳐날뛰였다. 우리 밀영에서 얼마간 가면 집단부락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자위단놈들과 적《토벌대》놈들이 주둔해있었고 남호두에는 악질경찰대놈들이 있었다.
내가 있는 밀영에는 독립려단 정치위원동무를 비롯하여 그리 많지 않은 인원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해 가을에 겨울을 나기 위하여 량식을 마련하여두었는데 그것은 주로 콩, 팥 등이였다. 콩을 닦아먹기도 하고 떡도 해먹으면서 지냈다. 이렇게 콩만 먹고 추운 겨울을 산에서 난다는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였다. 그런데 그 콩도 얼마안가서 떨어지게 되였다. 뿐만아니라 콩만 먹다나니 영양부족으로 《쫄라병》에 걸리여 몸을 잘 쓰지 못하는 동무들이 생겼다.
그렇다고해서 소수인원으로 이곳저곳 다닐수도 없었다.
《토벌대》들이 밤낮 싸다니는곳에서 발자국을 내면 발각될 위험성이 있었다. 우리는 부득이 겨울을 그곳에서 나고 봄이 되면 활동을 시작하여야 하였다.
우리는 곤난을 극복하면서 설명절을 지냈다. 어느덧 이른봄이 되였으나 산속은 흰눈이 쌓인채 계속 추웠다.
식량사정은 더욱 곤난하여졌다. 당시 중대장이였던 박성철동지는 대원 5명을 데리고 경박호너머로 식량을 구하러 떠났고 차장복, 복장춘 두 동무는 1련대본부에 련락을 갔다.
그들이 떠난지 보름이나 지났을 때였다. 하루는 내가 직일을 서게 되였는데 새벽이 되였을 때 밖에서 총성이 들려왔다. 우리는 적들의 불의습격을 당하게 되였다. 나와 같이 몇동무들은 지휘부를 구원하기 위하여 먼저 떠나서 적을 유인하기로 했다.
적《토벌대》놈들은 멀리서부터 무리를 지어오고있었다.
우리들은 우정 눈을 헤치면서 도로있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우리는 적들이 따라오도록 하기 위하여 발자국을 내면서 가다가 도로있는데까지 가서 발자국을 감출 작정이였다.
다른 한편 려단정위를 위시한 본부 동무들은 발자국을 메우고 산속으로 빠져들어가게 되였다.
밀영지까지 들어온 적들은 우리가 낸 발자국을 따라왔다. 적은 우리를 발견하였다. 그러나 적들은 우리가 가는곳뿐만아니라 벌써 본부동무들이 빠져간쪽을 발견하고 추격을 서둘렀다.
뒤에서는 총소리가 났고 전투가 벌어졌다. 적의 추격을 받은 본부동무들은 적은 력량으로써 적들과 싸우게되였으니 그야말로 결사전이 벌어졌던것이다.
그런데 우리도 역시 적들의 추격을 받게되였으므로 본부 동무들을 지원할수가 없었다.
겨울동안 고난을 이겨낸 우리는 뒤를 따르는 적과 싸우면서 눈이 허리를 치는 수림속으로 들어갔다.
뒤따라 오는 적들도 눈에 빠져 빨리는 따르지 못하였다. 때로는 적과의 거리가 수십m밖에 되지 않았고 아침부터 저녁때가 되여도 20~30리밖에 더 가지 못하였다. 종일 먹지도 못한 우리들은 때로는 눈속에 다리가 빠져 거꾸러지기도 하였다. 입에서 말도 나오지 않았고 얼굴은 몹시 창백하여졌다. 몸은 언 나무통처럼 굳어지며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해질무렵이 되여 우리는 골짜기 물곬에 이르러 얼음을 따라 산등성이로 올라갔다. 발자국을 내지 않기 위해서였다.
종일 뒤따르던 적들은 날이 저문후에야 추격을 멈췄다.
밤이 되여 우리는 산속에서 눈을 한길이나 쌓아올리고 그속에 들어가 쉬였다.
몸은 극도로 피곤하였으나 적들이 산주위에서 떠나지 않았기때문에 안심하고 잘수 없었다. 우리에게는 먹을것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식량을 구하러 부락에 내려갈수도 없었다.
이튿날 우리는 여러가지로 의논한끝에 그곳에서 약 20리나 떨어진 산속에 있는 숯가마를 찾아갔다. 그곳에 가면 행여나 사람들이 있을가 하는 기대를 걸었던것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사람도 먹을것도 없었다. 우리는 주린 창자를 안고 그곳에서 또 밤을 지냈다.
적들은 밀영을 습격한후 련3일이나 산속을 싸다니면서 우리들을 수색하고있었다. 이러한 형편에서 우리는 산속에 가만히 파묻혀있다가 적들의 발악이 좀 뜸해진 다음에 활동하는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우리는 눈속을 집으로 삼고 옹근 사흘동안을 입에다 아무것도 대지 못한채 추위와 기아속에서 지냈다. 우리앞에는 산속에서 굶어죽느냐 그렇지 않으면 살길을 찾아가느냐 하는 절박한 문제가 제기되였다.
나는 이러한 순간에 동무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며 희망을 주는것이 당원으로서의 임무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밀영에 있을 때 려단정위와 박성철중대장이 다시 만날 시일과 장소를 토의하는것을 들은 일이 있었다. 나는 당시 기관총수였기때문에 항상 지휘부에 있었던것이다. 나는 《며칠만 더 참아냅시다. 려단정위를 위시한 여러 동무들이 희생되였다하더라도 우리는 식량을 구하러갔던 중대장동무를 만날수 있소. 그러면 우리는 다시금 영광스러운 혁명대오를 찾을수 있을것이요.》하고 동무들에게 말하였다.
김룡연동무와 신입대원 한 동무도 이에 동의하였다.
우리는 《굶어죽을지언정 적에게 체포되여서는 안된다. 하물며 목숨을 살리기 위하여 적의 앞으로 갈수는 더욱 없다. 모든 난관을 박차고 반드시 대오를 찾자.》고 서로 결의하였다.
그러나 다문 며칠이라도 어떻게 더 견디여나갈것인가 하는것이 또 문제로 남았다.
적들의 발악은 좀 즘즘하여가기는 하였으나 산주위에는 역시 적들이 우글거리고있었다.
그렇다고하여 산속에서 먹을것을 구한다는것도 용이한 일이 아니였다. 우리는 셋이서 다시 의논하였다.
《저 야산에는 배추밭이 있었는데 눈을 헤치면 배추떡잎이 있을것이다. 그것이라도 주어다 먹을수 있지 않는가.》우리는 이렇게 타산하고 있는 힘을 다하여 눈을 헤치면서 배추밭 있는곳으로 내려갔다. 그곳은 숯가마 있는데서 그리 멀지는 않았고 부락에서 가까운곳이였다. 얼마간 내려가니 길이 나타났는데 발자국을 내지 않기 위하여 잔디우를 디디면서 내려갔다. 이렇게 얼마간 내려가니 멀리서 적《토벌대》놈들이 20여명가량 오고있었다. 우리 세사람은 길을 피하여 발자국을 감추면서 길에서 약 50m 떨어진 눈속에 파묻혔다. 온몸에 눈을 덮고 얼굴만 내놓고 적들의 거동을 살피고있었다.
《만약 발각되면 어떻게 할것인가. 만일 그런 경우에는 남은 총알 열다섯방으로 죽을 때까지 싸울뿐이다.》
우리는 이렇게 결심하였다. 적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앞장선놈이 그냥 우리앞을 지나쳤다. 그 뒤놈들은 앞에선 놈을 따라 별로 살피지도 않고 지나갔다. 적들이 멀리 지나가버린 다음에 우리는 일어나서 다시 배추밭으로 향하여갔다. 배추밭에는 군데군데 눈이 녹았었다. 그런곳에는 떡잎이 얼어붙은것이 드문드문 보였다.
주린 배를 안고 여기까지 겨우 당도한 우리들은 참나무껍질처럼 꽛꽛이 언 떡잎을 하나둘 주어서 배낭에 넣었다. 그리고 발자국을 지우기 위해 뒤걸음으로 다시 산으로 올라갔다.
배추잎은 거두었으나 언것을 그냥 먹기는 힘들었다. 삶아먹어야 하겠는데 남비도 없어 본래 목재채벌하던곳에 가서 낡은 양철쪼각지를 얻었다.
우리는 배추잎을 산림속에 들어가서 삶아먹을 작정이였다. 날은 어두워졌다.
우리 세사람은 얼마쯤 걸어가다가 산등성이에서 불빛을 발견하였는데 찬찬히 살펴보니 그것은 담배불이였다.
(우리 동무들이면 이런 때에 담배를 절대로 피우지 않을것인데 …분명히 적《수색대》놈들의 담배불이다.)라고 나는 판정하였다. 우리는 길옆에 숨었다. 어둠속이라 적들은 이번에도 우리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우리는 불을 피우고 배추잎을 끓여먹어야 그래도 목숨을 이어갈수 있었다. 산속에서 나무아지를 주어서 불을 피우고 양철쪼각에다 눈을 넣어 배추를 끓였다. 나는 유격대생활의 규정대로 어떤 환경에서도 성냥을 떨구지 않고 가지고다니였던것이다.
나흘만에야 배추떡잎국으로 요기를 했다. 다음날에는 어떻게 할것인가?…
우리는 밀영이 있던곳으로 찾아가기로 하였다. 우선 동지들을 만나기 위하여서였고 또한 그곳에 가면 혹시 먹을것을 얻을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데서였다. 적들이 들어와서 우리가 묻어둔것을 파갔다 하더라도 혹시 조금은 남아있을수 있다고 생각되였다.
우리는 밀영으로 《토벌》갔던 적들의 발자국을 따라갔다.
식량은 밀영에서 10리나 떨어진곳의 진대나무밑에 다 묻어두었었는데 그곳에 가보니 벌써 놈들이 누비듯이 뒤졌던것이다. 진대나무밑에 묻은 콩은 한알도 없었고 소고기도 없었다. 좀 남았다는것은 소염통뿐이였다.
우리는 그것을 눈에 대충 씻어서 싸리가지로 불을 피워놓고 구웠다.(싸리가지는 낮에 불피우면 불길만 오르고 연기가 잘 나지 않는다.) 불에 구운 소염통이 며칠 굶은 우리에게는 별맛이였다.
우리는 밀영지를 향하여갔다. 밀영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곳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눈우에 쓰러진 사람의 시체를 발견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것은 우리 소대장의 시체였다. 그 순간 우리들의 가슴은 미여지는듯이 아팠고 원쑤에 대한 복수심이 불길처럼 솟아올랐다. 지난날 그와 함께 고락을 같이하면서 간고한 투쟁을 하던 가지가지의 일들이 눈앞에 떠올랐다.
우리 세사람은 시체옆에서 고개를 숙이고 한참이나 흐느꼈다. 그러나 적들이 드나드는곳에서 오래 머무를수는 없었다. 《동무들 어서 시체를 안장하고 갑시다.》하고 나는 말하였다.
우리 세사람은 시체를 안장하였다.
우리는 다시 밀영으로 찾아갔다. 그 근방의 눈은 격렬한 전투에서 흘린 동지들의 붉은 피로 물들어있었다.
우리는 박성철중대장이 려단정위와 만나기로 약속한곳을 찾아서 또 걸어갔다. 우리는 산등성이쪽으로 더 가야 하였다. 얼마쯤 걸어가다가 눈속에서 금방 지나간 두 사람의 발자국을 발견하였다.
《적들이 간 자취인가? 그렇지 않으면 우리 동무들의 발자국인가?》
우리들은 서로 의논하였다. 여러모로 추측해본 결과 그것이 우리 동무들의 발자국일것이라고 판정하였다.
이때는 바로 련락갔던 동무들이나 중대장동무가 돌아올수 있는 시기였고 지대로 보아도 그들과 약속한 지점이였던것이다.
이렇게 판정한 우리 세사람은 힘을 내여 그 발자국을 따라갔다.
우리는 산중턱에서 그들을 거의 따라잡자 《동무들!》하고 불렀다. 그들은 과연 우리 동무들이였던것이다. 그들은 차장복과 복장춘동무들이였다.
우리는 어찌나 반가왔던지 어찌할바를 모르고 한참동안 서로들 껴안고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밀영을 떠나게 되던 이야기로부터 동지들이 전사한것, 우리 셋이 이때까지 곤난을 겪으면서 다니던 사실들을 한참 이야기하였다. 그들은 남비도 가지고왔으며 쌀도 약간 가지고왔었다. 그런데 지휘간부들을 만나지 않고는 행동을 결정할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든지 중대장을 만나야 했다.
이리하여 다섯사람이 일행이 되여 중대장동무와 만날지점을 찾아갔다. 그때 우리는 5일간씩 간격을 두고 지정한 장소에서 만나기로 하였었다. 그날은 25일이였다. 이날에 못만나면 또 닷새동안 기다려야 한다. 이미 약속한 지점근방에 왔을 때는 캄캄한 밤이였다. 혹시 우리들이 이곳에서 서로 만나기로 한것을 적들이 알고 매복해있을는지도 모를 일이였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경각성을 바싹 높이면서 찾아들어갔다.
목적한 그곳에 당도하니 불빛이 보이였다. 우리들의 경각성은 더욱 높아졌다. 사람이 그곳에 있는것이 분명하다. 여하튼 들어가보아야 한다고 작정한 우리들은 불빛이 보이는곳을 포위하고 전투준비를 단단히 하면서 조여들어갔다.
그곳에는 천막이 쳐있었고 그속에서 불을 피우고있었다. 사람들이 다가오는것을 알아차렸던지 그속에서 《누구야!》하고 소리를 쳤다. 우리도 마주대고 소리쳤다.
그속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약간 쉰 목소리였는데 어딘가 귀에 익은 음성이였다. 몇마디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 우리는 그들이 식량을 해결하러갔던 동무들이 틀림없다는것을 알았다.
바로 그곳에 박성철중대장동무도 있었다. 나는 그를 만나자 참았던 눈물이 일시에 쏟아져내렸다. 나는 중대장에게 그동안의 경과를 대충 보고했는데 말도 바로나가지 않았다.
모든것을 알아차린 중대장동무는 나를 부여잡고 눈물을 머금었다.
이윽고 중대장동무는 《동무들은 대단히 피로하였을테니 여기서 편히 쉬오. 우리가 곧 밥을 지을테니.》라고 하면서 우리들에게 누울 자리를 마련하여주었다. 다섯사람은 그제서야 마음을 놓고 잠이 들었다.
얼마 지나서 중대장동무는 우리를 깨웠다. 우리는 석달만에 좁쌀밥을 처음으로 먹었다.
중대장동무는 우리들이 식사를 끝마친후에 말하였다.
《동무들은 피곤하여 걷기가 어렵겠지만 우리는 이곳에 오래 머무를수 없소. 적들이 올 위험이 많으니 밤중에 떠나야 하겠소.》
이리하여 중대장을 만난 우리 소부대는 눈보라치는 날 경박호의 얼음을 타고건너 다시 투쟁의 길로 떠났다. 그후 갖은 난관을 뚫고 본대오를 찾은 우리는 오상현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항일유격대원들의 삶과 투쟁 -회상기, 대오를 찾아서, 동지들 이 총 받아 주 관련기사목록
|
삶과 문학 많이 본 기사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