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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역사 유물과 유적을 찾아서(1)

평양성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23/06/09 [10:58]

조선의 역사 유물과 유적을 찾아서(1)

평양성

프레스아리랑 | 입력 : 2023/06/09 [10:58]

조선의 역사 유물과 유적을 찾아서(1)

 

 

 

평양성

 

 

 

  © 프레스아리랑



우리 민족의 발상지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가장 오랜 도읍지의 하나인 평양은 일찍이 동방의 천년강국으로 우뚝 솟아 빛을 뿌렸던 고구려의 수도였다.

 

보다 조건이 유리한 평양으로 수도를 옮긴 고구려는 수도방위를 위해 평양성을 쌓았는데 이 성을 장안성이라고도 불렀다.

 

 

공화국의 수도 평양시 평천구역에 위치한 만수대창작사 옆에는 아직도 옛성의 자태가 남아있다.

 

평양성은 북쪽에 금수산이 솟고 동, , 남 세면에 대동강과 보통강이 둘러막아 자연해자를 이룬 유리한 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평양성의 바깥성벽은 금수산의 모란봉을 북쪽 끝으로 하고 서남으로 을밀대, 만수대를 타고 보통강을 따라 뻗다가 보통강과 대동강이 합치는 목에서 동북으로 꺾이여 대동강을 거슬러 대동문을 지나 다시 모란봉에 이르렀는데 그 둘레는 약 16이다.

 

평양성 안은 성벽들로 가로막아 내성, 중성, 외성, 북성으로 나누었다.

 

내성은 을밀대에서 남산재에 이르는 지대를, 중성은 내성의 남쪽 안산에서 동쪽으로 대동강까지의 지대를, 외성은 중성의 남쪽 대동강까지의 넓은 지대를, 북성은 내성의 북쪽 모란봉과 전금문 일대를 포괄하였다.

 

내성은 궁성이고 중성은 중앙관청들이 있는 황성이였으며 외성은 주민거주지역이였다.

 

북성은 내성의 보위성인데 여기에는 사원 등도 배치하였다.

 

성벽은 돌로 쌓거나 돌과 흙을 섞어 쌓기도 하였는데 능선에서는 외면축조방법을, 평지에서는 양면축조방법을 썼다.

 

성문은 내성과 중성, 외성 등에서는 각각 네면에 내고 북성에서는 남쪽과 북쪽에만 내였다.

 

고구려는 외부와 통하는 중요한 성문들에는 옹성을 쌓았다.

 

또한 평양성에는 7개의 장대가 있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내성의 을밀대와 북성의 최승대이다.

 

평양성벽에서 글자를 새긴 고구려 성돌들이 발견되였는데, 이 성돌들에 의하여 평양성의 축성년대 등이 밝혀졌다.

 

참으로 평양성은 고구려의 문화와 건축술, 고구려 사람들의 슬기와 재능을 보여주는 귀중한 역사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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