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영화계의 아름다운 《별》(3)
주체91(2002)년 봄 어느날 오미란배우는 침상에서 감격적인 소식을 전해듣게 되였다. 꿈결에도 그리운 위대한 장군님께서 촬영소에 예술영화 《생의 흔적》의 속편인 《이어가는 참된 삶》을 만들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는것이였다. 그의 가슴은 불시에 흥분으로 세차게 높뛰였다. (그이의 품속에서 자란 영화배우로서 이제 나에게 남은 일은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영화창조사업에 기여하는것이다.) 이렇게 비장한 결심을 한 그는 자기의 생이 얼마남지 않았다는것을 이미 알고있으면서도 서슴없이 촬영현장으로 나갔다. 그는 끊임없이 엄습하는 고열과 동통으로 정신이 혼미해지는 속에서도 강의한 의지로 대본을 연구하며 밤을 밝혔고 진실한 형상을 창조하기 위해 눈이 가득 덮인 두엄더미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는 눈물이 글썽해진 연출가들이 어서 나오라고, 그만 못나오겠는가고 소리치지 않으면 안되게 하였다. 그해 12월 예술영화 《이어가는 참된 삶》을 몸소 보아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 영화는 선군시대 영화예술의 본보기라고 말할수 있다고 높이 치하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평범한 녀배우의 병을 두고 그처럼 마음쓰시며 미처 수량도 다 꼽지 못할 정도의 보약들과 귀중한 주사약들, 값비싼 설비들과 관록있는 의학자들도 보내주시며 온갖 사랑과 은정을 다 돌려주시였다. 그이의 따뜻한 사랑이 불사약이 되여 그는 발병이후 생을 마칠 때까지 무려 8년세월을 살았다. 그가 병원침상에 누워있던 어느날 복도를 지나가던 간호원처녀는 그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되였다. 끊어졌다가는 이어지고 이어졌다가는 끊어지고… 그것은 분명 노래소리였다. 위대한 장군님을 우러러 녀배우가 심장으로 부르는 그리움의 송가였다.
시내물 굽이굽이 어데로 가나 넓고넓은 저 바다 품으로 가네 내 마음 훨훨 어데로 가나 구름넘어 그리운 장군별님께
수년간 병마에 시달리면서 여러 차례 대수술을 받은 그가, 그래서 이제는 말은커녕 손짓조차 변변히 못하는 그가 노래를 부르는것이였다. 믿기조차 어려운 현실앞에서 담당의사와 간호원들, 병원일군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였다. 사람들이 곁에 와 선것도 모르는듯 그는 창밖을 하염없이 내다보며 쉼없이 노래를 불렀다. 마지막기력을 다 짜내는지 송골송골 맺히는 땀방울, 간신히 움직이는 입술과 알릴듯말듯 흘러나오는 노래소리, 축축히 젖어든 눈굽… 인민배우 오미란은 이렇게 갔다. 그날은 여름의 신록이 한창 무르녹던 주체95(2006)년 6월 26일이였다. 그는 영화를 온넋과 정열을 다 바쳐 끝없이 사랑한 우리 나라 영화계의 아름다운 《별》이였다. 그가 배우로 활동하는 전기간 조국을 빛내이는데 크게 기여한 우리 나라 영화계의 아름다운 《별》로 빛날수 있은것은 재능의 싹을 찾아 내세워주고 아름답게 가꾸어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뜨거운 사랑이 있었기때문이다. 한없이 따사로운 위대한 그 사랑속에서 인민배우 오미란은 오늘도 영생의 삶을 누리고있으며 인민의 기억속에 우리 나라 영화계의 아름다운 《별》로 빛나고있다.
- 조선예술영화 《이어가는 참된 삶》의 장면들 - <저작권자 ⓒ 프레스아리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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