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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묵시록 3 윤어게인
尹 등장은 한국 식민지화 위한 불가역 조치 12.3 내란 분쇄로 대한민국 급속 붕괴 막아 필연으로 나타난 계획된 맥락 오래된 음모
명예심과 역사의식이 있는 자라면 후세에 내가 어떻게 기록될 지 마땅히 두려워 할 지어다. 윤석열 무리들은 보라. 후세에 길 이 전할 역사가 너희를 어떻게 기록하는지 똑똑히 보라.
"2018년 9월,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이 15만 평양시민이 운집한 운동장에서 연설 했다. <다시는 한반도에 전쟁이 없을 겁니다. 우리민족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합니다.>
평양시민들은 열렬한 기립박수를 보냈다. 북조선 김정은 위원장도 흡족해 했다. 이 장면은 적어도 당시 북이 분단문제 해결 에 관한 한 남한보다 훨씬 개방적이며, 자주 평화 통일을 향한 기대와 열정이 강했음을 보여줬다. 왜냐하면 당시 남한 서울운동장 에서 수십만 시민이 운집한 가운데 북의 김 정은 위원장이 연설하는 장면은 연출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미국이 허용하지 않았지만 그보다 남한내 극우세력을 포함한 보수우파들의 극렬한 대북혐오증과 반대로 될 일이 아니었다. 분단 70년을 넘기면서 북쪽 주민들보다 남쪽 주민들이 훨씬 더 북을 적대시 하고, 혐오하겠금 교육 받고 세뇌된 상태였다.
북쪽 마음 얻는데 실패한 대한민국
분단이후 미국과 남한에 의한 대북봉쇄와 압박 및 적대시 정책은 수많은 간첩조작에 서 보듯 매우 악랄하게 전개되었다. 이를 알게 된 북쪽 주민들은 미국과 남한에 굴종 하거나 항복할 바엔 차라리 사회주의 형제 국인 중국의 동북 4성이 되겠다는 여론이 형성될 정도였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헌법조항에 한반도 전체와 그 부속도서를 영토로 삼는다는 문구를 넣어 놓고도 정작 북반부의 마음을 얻는데는 실패하고 있었다. 그것은 분단의 씨를 제공한 미국과 일본이 원하는 바이기 도 했다. 괴뢰 한국의 극우정부는 역대로 미국 일본이 원하는 대로 대북정책을 시행 했던 것이다.
이런 맥락 가운데 문재인이 북에 가서 평양 시민과 북측 지도자들 앞에 우리민족 운명 은 우리 스스로 결정 운운한 연설은 미일을 놀라게 했다. 특히 한국을 손아귀에 주무르 는 미국은 김대중 노무현에 이은 문재인식 대북 유화정책이 계속되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이러다 개성공단 복원을 들고 나오 지는 않을까. 뭔가 불가역적 조치가 필요 했다.
미국은 한미동맹 군사연습을 강화하고 대 북 전단살포를 지속하는 한편, 전략자산급 무기구매도 더 늘리게 강요했다. 무엇보다 자기들 말을 알아서 잘 듣고 충성할 새로운 인물을 찾아야 했다.
점지된 꼭두각시 윤석열
제 20대 대선 직전인 2021년 9월 하순, 문재인 대통령이 UN총회 참석차 미국에 갔다. 이 사이 미 FBI수장 크리스토퍼 레이 와 CIA수장 해스 펠이 윤석열 당시 검찰총 장을 만나러 4일 간격으로 내한했다.
이는 문재인 이후 다시는 북과 잘 지내겠다 는 대통령이 한국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고, 자기들의 영원한 하청국으로 못박기 위한 불가역적 조치의 일환이었다. 윤석열은 미일이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세계패권 과 이익을 지킬 최전방 기지로의 식민한국 을 완성해 줄 도구로 점지됐던 것이다.
식민한국의 완성을 위해선 몇 가지 전제가 필요했다. 영구분단화 위한 남북관계 파탄, 남북관계 파탄에 기반한 대결 고조와 전쟁, 전쟁상황을 빌미삼은 한일 일체화 작업, 곧 한미일 군사동맹 체결 등이었다.
윤석열은 이를 충실히 이행했다. 우발적 전쟁방지를 위한 9.19합의 파기로 남북관계를 파탄냈다. 언제 전쟁이 일어나 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정세가 조성됐다. 일본과 끊임없는 일체화 분위기로 한미일 군사동맹을 위한 정지작업도 벌였다.
위안부 제3자 변제, 핵오염수 방류 지지, 독도조형물 철거, 친일 뉴라이트 인사 중용 이 진행됐다. 윤석열은 2023년 8월 바이든 기시다와의 캠프 데이비드 3자 회동에서 독도 일본영토화를 위한 기시다의 발언을 암묵적으로 수용했다.
한미일 군사동맹은 독도 탈취 계략
한미일 군사동맹은 미국으로선 식민한국 관리를 일본에 맡겨 중국 러시아를 견제하 는 더 강고한 전선구축 의미가 있었다. 일본으로선 독도해역 공유를 공식화 하여 독도를 사실상 일본영토화 하는 의미가 있었다.
이에 따른 한국민의 반일정서를 제압, 일거 에 한일을 묶는 동맹을 위해선 전쟁이 필요 했다. 북을 자극하여 전쟁상황을 만들어야 했다. 이렇게 해서 윤석열이 얻는 것은 정적 과 반대세력을 손쉽게 제거하고 영구집권을 보장 받는 것이었다.
윤석열은 처음부터 영구집권을 꿈꾸며 국 민 생명과 재산을 담보한 전쟁을 생각했다. 이를 위해 집권 전부터 미국과 교감 아래 대북 선제타격을 언급했다. 집권 후엔 종북 좌파 암흑세력 척결을 외치며 반북 분위기 를 계속 띄웠다.
전광훈과 통일교 등 기독교와 연계한 윤석 열 통일대통령 만들기 천만서명운동도 벌 어졌다. 자유가치, 가치동맹, 자유북진통일 등의 구호도 등장했다. 임기 5년 만에 통일 대통령이 되겠다는 건 북진전쟁을 하겠다 는 의미였다. 국민들은 눈치 채지 못했다.
급한 불 껐지만 계속되는 망국책동
마침내 2024년 12월 3일 밤, 계엄이 선포 됐다. 용감하고 정의로운 시민들의 즉각 출 정과 이재명과 야당의 기민한 대응, 양심적 군인들의 소극적 활동이 결합했다. 계엄은 2시간여 만에 해제됐다. 윤석열발 친위 쿠 데타의 실패였다. 명백한 내란이었다.
12.3 내란의 실패는 미국과 일본의 한국 영구 식민지화 계획의 실패였다. 미국은 한국을 대륙세력으로부터 완전히 떼어 놓 으려다 실패했고, 일본은 윤석열 임기내 독도 편입을 공식화하려다 실패했다.
내란은 필연적으로 오게 되어 있었다. 그것은 한국식민화를 위한 미일의 불가역 조치라는 계획된 맥락이었고, 오랜 음모의 결과였다. 이재명과 야당, 시민들과 양심적 군인들은 그날 저들의 음모를 분쇄함으로 써 대한민국 붕괴를 막았다. 전쟁을 막고 급한 불을 끈 셈이었다.
그렇다고 음모와 계획이 끝난 건 아니었다. 기회를 놓친 게 못내 아쉬운 미일 극우세력 들은 한국내 기독교 및 국힘당과 연계, 윤 어게인을 외치는 이들로 다시 길거리에 나 타났다. 그들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을 부정 선거로 호도하고, 그 대척에서 싸울 새 꼭 두각시로 장동혁 국힘당 대표를 내세웠다. 윤석열을 빼다 박은 자였다.
'빛의 혁명'으로 불린 12. 3 내란 분쇄와 이재명 대통령 등장이 대한민국 붕괴를 멈 추고 새로운 나라의 부활로 이어질 지는 아직 더 두고 봐야 했다. 분명한 건 때마침 이어진 트럼프 관세전쟁으로 한국민들이 미국 실체를 제대로 깨닫기 시작한 점과 '윤어게인' 구호로 상징되는 내란세력 망국 책동도 계속될 것이란 점이었다."
서기 2050년 후세 역사가 쓰다
김문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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