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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통신> 미국식 서구정치와 닮은 이재명식 정치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25/08/27 [11:28]

<미국통신> 미국식 서구정치와 닮은 이재명식 정치

프레스아리랑 | 입력 : 2025/08/27 [11:28]

<미국통신>

미국식 서구정치와 닮은 이재명식 정치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옳거니 하면서 반겨주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옳고 그름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아직까지도 언론을 통해 논란이 되고 있는 이재명식 정치행정의 한 가지 예를 가지고 그것을 서구정치의 대명사인 이곳 미국현지의 그것과 비교해 보려 한다.

 

이곳 미국에선 정부가(연방정부 주정부 지방정부) 주민들에게 정부체크(수표)를 돌리는 것이 거의 일상화되어 있다시피 하다. 걸핏하면 알지도 못하는 체크들이 난무(?)한다. 기름 값이 너무 올랐다거나, 나이가 60넘은 사람들이 크레딧카드에 빚이 많다거나, 예기치 못한 일로 인해 주민들의 생활이 곤란에 처해지거나 손해를 볼 경우 어김없이 의회나 정부차원에서 돈을 풀어 보내주는 조치를 취한다.

 

특히 몇 년 전 코로나 사태로 인해 주민들과 경제가 경제적 타격을 입었을 때 미국 정부는 지체하지 않고 천문학적인 숫자의 금액을 방출하는데 서슴치 않았다. 이민자인 나로서는 자연재해격인 질병만연에 대해 정부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이질적이지만 대단히 인상적으로 보였다. 당시 여전히 소상공인 카테고리 범주에 비지니스를 하던 나로서는 한국인들이 알면 놀랄 정도의 적지 않은 금액을 수차례에 걸쳐 받았고 그것은 당시에 가뭄에 비처럼 느꼈던 바 있다.

 

그래도 당시 누구하나 선심성 퍼주기 예산낭비라 하거나 포퓰리즘이라고 욕하는 정치인들이나 언론은 눈 씻고 보아도 보기 힘들었다. 그 결과에 기인한 것인지 모르지만 요즘 미국은 인플레이션 잡기에 국가적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도 누구하나 그 당시 도탄에 빠진 민생과 경제회복을 위해 미국의 각급 정부들이 행한 직접 예산지원에 대해 나무라는 것을 보기 힘들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소비쿠폰 논란을 보면서 솔직히 참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 정도 금액은 미국 시민들이 받아온 금액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인데 왜 저리 저 단순한 문제를 가지고 마치 나라의 운명이 걸린 것 마냥 거창한 구호를 내세우는지 의아할 뿐이다. 재정건전성이란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 아닐 터인데 바다건너 대한민국 땅에서는 수면아래에서 아직도 그것에 매달려 죽기 살기로 명분싸움을 하는 땅으로 보인다. 안타깝기가 그지없다.

 

새로움에 대한 수용성과 포용성은 그 사회의 잠재력이자 발전가능성의 척도이다. 어떠한 틀에 매달려 그것이 가치기준의 전부인 냥 취급되는 사회나 국가의 미래는 소멸이외에는 달리 길이 없을 것이다. 언론인 출신인 필자는 대한민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빗코인으로 대변되는 암호화폐에 출현에 저항하는 대한민국 사회와 소위 지식인들의 반항과 수용거부를 통해 느낄 수 있었고, 이것 외에도 수많은 사례를 통해 대한민국이 왜 선진사회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너무나 절렬한 심정으로 바라보아야만 했다. 지금도 그 같은 대한민국의 현실은 별반 바뀐 게 없다고 보여진다.

 

이재명이 선보인 소비쿠폰의 출현과 사용은 이 같은 대한민국 사회의 본질적인 장애였던 고정관념과 기득권 체제에 대한 하나의 도전이자, 사회적 역동성에 대한 시험이라고 보아도 충분하다고 본다. 아직도 이 부분은 걸음마 단계에 머물고 있다. 앞으로 소비쿠폰 뿐만이 아니라 다른 수많은 분야에서도 대한민국은 이 같은 부질없는 소동을 겪을 것이고 이것은 전근대적인 국가체제에서 근대문명국가로 나아가는 대한민국 사회의 통과의례가 될 것이다. 문제는 그 대상에 대한 논란의 수준이 너무나 낮다는 것이다. 상식과 인간애가 결여된 사회에서만 볼 수 있는 희한한 코메디극인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나의 안타까움은 앞으로도 끝없이 계속될 것이란 불안감이 나의 솔직한 느낌이다.

 

한편으론 이러한 궁금증도 가시질 않는다. 일 년에 15천명의 인구를 가진 도시 하나가 자살로 인해 사라지는 그 땅에서 그들의 최소한의 구성원들의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하는 조치가 내려졌다면 과연 그러한 일이 벌어지겠는가. 그럴 경우 이곳 미국의 각급 정부는 과연 무엇을 했겠는가. 아마도도 전쟁과도 같은 자세로 임했을 것이다. 아니, 지금은 실제로 그들은 전쟁처럼 임하고 있다. 수많은 사회안전 장치들을 촘촘히 만들어 놓고 그것을 시행하기 위해 개미들처럼 열성이다. 그것이 내가 보는 현실이다. 그것이 본질적인 차이이다. 심지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조차 이럴진 데 대체 대한민국식 자본주의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인간을 배려하지 않고 인간을 가진 자들의 더 많은 욕심을 위한 소모품정도로 해서 돌아가는 대한민국의 자본주의를, 상당한 그 무언가가 있는 세계적 우월적 지위를 가진 위대한 그 무엇으로 취급하는 대한민국 사회구성원들의 지적 주소와 수준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나에게는 이런 게 모두 참혹한 일이다.

 

그래서 내가 느낀 것은 이재명식 정치가 미국식 서구정치와 조금이라도 아니 많이 닮았다는 것이다. 뭣도 모르는 오랑우탕들과의 싸움에서 허구한 날 진을 다 빼고 말고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안타깝고 안쓰럽기만 하다. 보수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준 것부터가 사회적 실수였다. 부정부패 추종세력이란 좋은 말을 놔두고도 말이다. 마치 존재가치를 가진 냥 말이다.

 

 

                                                                       본지 미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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